정제원의 캘리포니아 골프 <50>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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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5호 24면

지난주 PGA투어 혼다 클래식에서 우승한 양용은(37). 한마디로 사나이다. 일단 술을 마시기 시작하면 주량을 헤아릴 수 없고, 사람을 좋아해 친구도 적지 않다. 듬직한 체구만큼이나 고집도 세다. 성격이 꼼꼼하지만 한번 목표를 세우면 좌우를 돌아보지 않고 오직 한길만을 가는 스타일이다. ‘야생마’란 별명도 그래서 붙었다.

야생마 양용은의 가르침

2004년 겨울, 그와 함께 축배를 들었다. 일본 투어 데뷔 첫해에 2승을 거두고 돌아온 직후였다. 술잔을 주고받는 사이 밤이 깊어갔지만 그는 자세 하나 흐트러뜨리지 않았다. “원래 술을 좋아하지도 않지만 그동안 이렇게 허리띠를 풀고 술을 마실 만큼 여유가 없었다.”

그가 말하는 ‘여유’란 시간이 없다기보다 돈이 없었다는 뜻으로 들렸다. 그날 밤 그는 자신의 미래를 이야기했다. 모든 말을 다 기억하지는 못하지만 “사나이가 한번 칼을 뽑은 이상 성공하고야 말겠다”는 말을 한 것만은 또렷이 기억이 난다. 국내 무대에 안주하지 않고 해외 투어에 도전해 성공하고야 말겠다는 굳은 의지도 내비쳤다.

양용은은 칼을 갈았다. 2006년 11월, 타이거 우즈를 물리치고 유러피언 투어에서 우승하면서 그의 꿈은 이뤄진 듯했다. 그러나 그는 안주하지 않았다. 이번엔 미국 PGA투어의 문을 두드렸다. PGA투어 정복은 그의 궁극적인 목표이기도 했다. 그러나 PGA투어의 벽은 높았다. 우승은커녕 톱10에도 들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30대 중반을 넘은 나이, 웬만하면 일본이나 국내 투어로 돌아올 만도 했건만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오히려 미국 캘리포니아주 팜스프링에 집을 마련하고 미국 정복을 위한 본격적인 준비에 들어갔다. 그 이후 양용은의 소식을 듣지 못했다. 대회 때마다 컷 탈락하거나 하위권에 머무는 경우가 잦았기 때문이다.

그가 상위권 입상에 실패한 가장 큰 이유는 ‘거리’였다. 국내에선 장타자에 속했지만 PGA투어는 달랐다. 280야드 내외의 드라이브샷 거리만으론 미국 무대에서 살아남기 힘들었다. 지난해 양용은의 평균 드라이브샷 거리는 286.9야드로 전체 선수 가운데 100위. 거리를 늘리려다 보니 이번엔 정확도가 떨어졌다.

‘집념의 사나이’ 양용은은 다시 한번 변신을 시도했다. 샷을 뜯어고치면서 권토중래를 별렀던 모양이다. 30대 중반의 나이에 샷을 뜯어고치는 건 모험에 가까운 일. 그러나 양용은은 우직하지만 머리가 좋은 선수다. 거리의 핸디캡을 만회하기 위해 3, 4번 아이언을 빼고 하이브리드를 연마했다. 페어웨이 우드 2개에 하이브리드 클럽이 2개. 드라이버까지 합하면 모두 5개의 ‘몽둥이’를 들고 PGA투어에 나선 것이다.

양용은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는 건 두 가지다. 하나는 클럽 선택을 ‘창의적’으로 하라는 것이다. 성공률이 낮은 롱아이언 대신 치기 쉬운 하이브리드를 선택해도 하나도 부끄러울 게 없다는 뜻이다.

또 한 가지는 샷을 가다듬고 고치는 데는 아마추어와 프로가 따로 없다는 것이다. 골프는 수영과 다르다. 수영은 한번 배우면 평생 가지만 골프는 그렇지 않다. 끊임없이 훈련하지 않으면 샷을 잊어버리고 만다는 평범한 진리를 양용은은 우리에게 일깨워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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