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식을 깼다, 예술을 넓혔다 …그들의 불온한 상상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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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4일과 5일 공연되는 에미오 그레코의 ‘지옥’은 무용수 8명이 디스코·팝·클래식 등 다양한 음악에 맞춰 지옥이란 공간을 상징적으로 표현한다. [성남아트센터 제공]

 대략난감이다.27일부터 다음달 12일까지 보름 남짓 열리는 ‘페스티벌 봄’은 다원예술축제다. 무용·연극·시각예술이라는 기존의 장르간 벽을 확 깨트리는 작업이다. 예술의 외연을 넓혀 새로운 체험을 선사하겠다는 야무진 생각이 바탕에 깔려 있다. 게다가 이번에 공연되는 작품들은 공연 예술의 메카인 유럽에서도 아방가르드로 분류되는, 최전방의 전위 예술들이다. 어떤가, 이 정도면 신선한가. 아니면 부담스러운가. 그래도 작품 하나하나를 뜯어보면 새로운 접근법에 무릎을 탁 치게 된다. 새로운 조류를 빨리 흡수하고자 하는 예술계의 ‘얼리 어답터’라면 놓치기 아까운 공연들이 적지 않다.

◆마르크스를 무대화하다=해묵은 이념 논쟁일까. 칼 마르크스의 의미를 새로운 시각으로 조명하는 공연이 4편이나 된다. 특히 마르크스의 저작 『자본론』 제1권을 무대화한 작품은 이번 축제의 개막작이다.

독일극단 ‘리미니 프로토콜’이 만들었다. 출연진 9명은 전문 배우들이 아니다. 모두 아마추어다. 어떤 형태로든 마르크스주의에 영향을 받은 실제 인물들이 무대에 오른다. 그리곤 자신의 경험을 독백식으로 떠든다. 마르크시즘의 권위자 토마스 쿠친스키부터 한때 마오쩌둥을 추종했다가 현재는 고가 브랜드 수집에 열을 올리는 인물까지 나온다. 자본주의 세상의 불평등을 큰 목소리로 외치다 자신의 젊은 시절을 회고하는 자도 있다. 다큐멘터리 형식의 연극인 셈이다. 한국인도 한 명 올라갈 예정인데, 아직까진 누구인지 비밀이다. 대본이 따로 확정된 게 없어 작품을 올릴 때마다 이야기가 조금씩 바뀌는 점도 흥미롭다. 27일 오후 8시, 28일 오후 6시 서울 대학로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

‘마르크스-에이젠슈테인-자본론’은 무려 9시간30분짜리 영화다. 밤 12시에 시작해 다음날 아침까지 이어진다. ‘뉴저먼 시네마’의 대부인 알렉산더 클루게 감독이 만든 것으로 예술의 상품화란 주제를 놓고 독일 지식인들이 펼치는 토크쇼를 그대로 담았다. 자막 없이 독일어로만 진행된다니, 단단히 각오할 것. 27일 밤 12시 서울 대학로 하이퍼텍 나다.

◆전위 예술의 지평을 넓히다=영국의 팀 이첼스는 연극의 이단자로 유명하다. 기존 연극 방식에 딴지를 걸고 심지어 희롱하는 것도 마다하지 않는다. 그가 만든 ‘스펙타큘라’는 해골 의상을 한 배우가 진지하게 죽음을 연기하는 여배우 옆에서, 그 연기에 대해 자꾸 시비를 거는 식이다. 공포와 죽음, 냉소와 유머가 얽혀 있다. 31일·4월1일 오후 8시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

축구팬이라면 이 비디오아트가 끌리겠다. 축구 경기장에 카메라 17대를 설치해 놓고 프랑스 축구 스타 지네딘 지단의 모습만 다각도로 촬영한 ‘지단, 21세기의 초상’은 27일과 29일 하이퍼텍 나다에서 상영된다. 이번 축제에 오는 최고 거물은 에미오 그레코다. 그는 최근 2,3년 사이 유럽 공연계에서 첫손가락에 꼽히는 안무가다. 암울한 현실을 경쾌한 율동에 담아내는, 절묘한 충돌의 미학을 보인다. 이번엔 성남아트센터에서 ‘지옥’과 ‘비욘드’ 두 작품을 공연한다. 02-2051-1126∼7.  

최민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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