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생 용돈마련 '몰래바이트'성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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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2면

서울 잠원동 C아파트 崔모 (11) 군은 요즘 복덕방.피자집.통닭집등 동네 가게의 명함이나 광고전단을 아파트에 돌리는 일을 하느라 몹시 바쁘다.

지난해 같은 반 친구의 소개로 시작한 아르바이트가 이젠 짭잘한 수입원이 됐다.

아파트 5백~6백 가구에 전단을 돌리고 받는 돈은 1만원정도로 몇번만 하면 꽤 큰 돈을 만질 수 있다.

崔군은 "아파트는 잡상인들이 들어가기 힘들어 우리가 한다고 하면 가게에서 좋아해요. 부모님 몰래 돈을 모아 게임기나 외제운동화등 평소 갖고 싶었던 것을 주로 사요" 라고 말했다.

서울 목동 H아파트에 사는 金모 (9) 군도 지난 18일 추석연휴가 끝난 뒤부터 동네 중국음식점의 광고스티커를 붙이는 일을 하고 있다.

혹시 부모가 알면 못하게 할까봐 집에는 이 사실을 숨기고 있다.

1백장만 뿌리면 2천원을 받을 수 있어 지금까지 닷새동안 하루에 1만원씩 5만원가량을 벌었다.

김군의 친구들도 이같은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는데 이 돈으로 서로 비싼 장난감 살 생각에 신이 나있다.

최근 각종 영업점들의 광고전단을 돌리는 아르바이트가 초등학생들 사이에 부모 몰래 한다해 '몰래바이트' 라는 이름하에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이같은 행위는 만 13세 미만 어린이를 근로자로 고용한 것으로 근로기준법상 금지된 불법행위. 또 전단 대부분이 구청에 신고되지 않는 것들로 옥외광고물관리법에도 위반돼 업주나 어린이 모두 불법을 저지르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초등학생들은 전단을 가지고 아파트를 출입해도 전단을 돌린다는 의심을 잘 받지 않는데다 대학생을 임시 고용하는 것보다 비용도 적게 들어 업자들은 오히려 이를 선호하고 있다.

업주가 한 어린이에게 권유해 시작돼고 이후 친구들끼리 소개를 거쳐 어린이들 사이에 퍼지는 이 불법 아르바이트는 서울 강남뿐만 아니라 수도권 일대 아파트 밀집지역에 급속도로 늘어나고 있는 실정이다.

서울 천호동 코오롱아파트 관리사무소 직원 金모 (30.여) 씨는 "주머니가 불룩해져 아파트 건물로 들어가는 어린이들은 영락없이 스티커를 붙이려는 것이다.

우리 단지에도 초등학생 3~4명이 이같은 일을 하고 있다.

보일 때마다 따끔하게 혼낸다" 고 말했다.

그러나 노동부.구청등 이를 관리.감독해야 할 정부기관들은 아직 상황파악조차 제대로 못하고 있는 실정. 성신여대 심리학과 채규만 (蔡奎滿) 교수는 "어린이들도 아르바이트를 해 돈을 버는 것은 노동과 돈에 대한 의미를 알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하지만 부모가 모른채 그것도 어른들의 삐뚤어진 상혼에 꾀여 불법 아르바이트를 한다면 이는 문제" 라고 지적한다.

또 蔡교수는 "어린이들이 부모 몰래 불법 아르바이트를 하는 경우는 부모들이 자녀에게 무관심한 탓이 크다" 며 "평소 관심이 소홀했다면 세심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고 일러준다.

한편 초등학생에게 일을 준 음식점 주인 朴모 (인천시 산곡동.37) 씨는 "어린이들이 찾아와 일을 하겠다고 해 1백장에 2천원씩 주고 시킨적이 있으며 다른 가게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특별히 잘못된 일인 줄 몰랐다" 고 말했다.

신용호.이재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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