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회 삼성화재배 세계바둑오픈] 2등과 상상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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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준결승 1국>

○·저우루이양 5단●·쿵제 7단

제2보(21~36)=서양 바둑꾼들은 진지하고 논리적이며 승부욕이 강하다. 바둑 환경이 워낙 열악해 당장은 고수가 나오기 어렵겠지만 기질적으로는 동양 사람보다 바둑과의 궁합이 더 잘 맞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진짜 고수가 되려면 꼭 필요한 또 하나의 요소가 바로 선을 과감히 넘어서는 상상력이다. 이 판의 쿵제 7단이 계속 ‘2등’에 머무르고 있는 이유도 상상력과 관련이 있지 않을까. 견실한 기풍에 안정적인 승부호흡, 뛰어난 수읽기 등 흠잡을 데 없는데도 결정적 고비에만 가면 벽에 막힌 듯 시원하게 솟아오르지 못하는 쿵제…. 초반의 골격을 결정지은 33에서 다시 그의 모습을 본다.

21~26까지는 정석 수순. 27에 걸치자 28의 협공, 그리고 29의 재협공은 많이 보는 그림이다. 30의 철주는 그러나 아주 드문 수. 귀를 내주지 않고 두 발로 딱 버티며 한번 싸워보자고 말하고 있다. 여기서 31로 한 수 물어본 쿵제는 장고 끝에 33으로 타협했다. 그러나 A로 푹 씌울 수는 없을까. 그 기막힌 유혹을 뿌리친 쿵제의 냉정함이 한편으로는 답답하다. ‘참고도1’ 흑1로 씌우면 백2로 건너붙이기. 5의 축으로 몰면 6으로 나간다. 수순이 너무 기니까 이 다음은 ‘참고도2’에서 보자. 축이 해제돼 흑이 안 되는 것 같지만 6, 8로 버티며 싸운다. 12까지 흑이 좋다는 결론. 물론 쿵제도 좌변을 다 주는 것은 아니고 B를 보고 있다.

박치문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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