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4자회담 꼭 성사시켜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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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한반도에서 전쟁상태를 법적으로 종결시키고 새로운 평화의 틀을 마련키 위해 내외의 관심을 모은 가운데 열린 4자회담 예비회담이 본회담의제문제에 대한 의견불일치로 결렬됐다.

이 회담은 당초부터 쉽게 진전될 것으로 예견되지는 않았다.

그러나 북한이 현시점에서 의제에 대한 그들의 종래 주장을 고집한다고 해서 우리는 4자회담에 대한 기대나 희망을 포기해서는 안된다.

오히려 북한의 태도가 그러하기에 4자회담은 그 필요성과 중요성이 더해지는 것이다.

오늘의 한반도는 6.25전쟁이 끝난지 반세기가 가까워오는데도 아직까지 법률상 전쟁종결조치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

한국의 휴전협정은 금년으로 44년간 지속됨으로써 국제법이 생긴 이래 그 수명이 가장 오랜 휴전협정이 됐다.

남북한은 분쟁의 평화적 해결을 다짐하는 유엔에는 함께 가입하면서도 불시에 전쟁의 도화선이 될지도 모를 휴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바꾸는, 즉 휴전선을 합법적 경계선으로 바꾸는 전쟁상태 종결조치는 강구하지 못하고 있다.

91년 체결된 남북한 기본합의서는 다음의 조건만 추가된다면 휴전협정의 대안이 될 수 있다.

남북한과 미국.중국, 그리고 유엔이 남북기본합의서를 휴전협정의 대안으로 받아들이고 그 효력을 보장할 국제합의를 이루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오늘의 휴전선은 그 운명이 남북한간에 평화통일의 길을 트는 평화적.합법적 경계선으로 바뀌게 된다.

북한은 한때 휴전협정의 서명국이 아닌 한국과는 종전협상을 할 수 없다고 고집하고 오직 미국과만 평화협정을 체결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미국과 북한이 설사 평화협정을 체결한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미국과 북한간의 관계정상화를 의미할 뿐 결코 전쟁상태를 법적으로 종결시키지 못한다.

왜냐하면 한국만이 휴전협정의 실질 당사자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현실을 감안, 한.미 양국은 마침내 96년 4월 한반도 휴전체제를 평화체제로 바꾸기 위한 국제협상을 갖자는 이른바 4자회담을 제안했다.

북한은 이 제안이 있은지 1년4개월이 지난 지난 8월부터 한국이 참가하는 4자회담을 위한 예비회담에 응해 오고 있다.

이것은 하나의 큰 진전이다.

그러나 북한은 회담에는 응하면서도 주한미군 철수라는 기왕의 입장을 고집함으로써 회담의 장래를 밝게 전망하기는 쉽지 않다.

한국 역시 평화통일과 흡수통일의 양자중 어느 쪽인가를 명백히 하지 못하고 있다.

대북 (對北) 정책도 소프트 랜딩에서 크래시 랜딩까지 오락가락하고 있다.

우리가 오늘의 휴전선을 평화적 경계선으로 바꿔 평화통일의 길을 트려면 우리 정책목표를 분명히 해야 한다.

첫째, 한반도문제의 국제성을 인정하는 것이다.

한반도문제는 남북 당사자간에 해결해야 할 문제와 주변국들의 협력을 얻어야 풀릴 문제로 구성된다는 현실을 인정하는 것이다.

둘째, 정부는 흡수통일과 평화통일에 대한 입장을 분명히 해야 한다.

왜냐하면 어느 입장을 택하느냐에 따라 문제해결의 방법과 과정이 크게 달라지기 때문이다.

흡수통일이나 북한의 조기 붕괴유도가 목표라면 휴전체제를 굳이 평화체제로 바꿀 필요가 없다.

셋째, 미국을 보는 우리의 태도도 달라져야 한다.

미국은 한국과의 우호관계를 유지하면서도 북한이 그들의 대외정책 (핵.미사일등)에 협조하는 한 구태여 북한을 붕괴시키려고 하지 않는다.

지금 시점에서 북한은 자기 주장만내세울 수 없는 다음과 같은 어려움에 처해 있다.

▶가중되는 식량난과 만성화된 경제위기▶미.일과의 수교를 통한 경협추진▶한국을 통한 투자 및 외자유치 필요성 등이다.

북한은 단기적으로는 4자회담에 소극적으로 임하지만 시간과 여건은 북한으로 하여금 협상을 통해 생존여건을 만들도록 요구하고 있다.

북한은 지금 명분과 실리간의 갈등조절이라는 내적 진통을 겪고 있을 것이다.

우리는 이 기회를 적극 활용, 4자회담을 성사시켜 휴전체제를 평화체제로 전환시키는데 총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이영일 <호남대 겸임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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