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세벌식 키보드' 속도 50%나 빨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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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안과의사인 최우정 (崔又正.36) 박사는 아직도 흥분이 가라앉지 않았다.

지난 26일 삼성전기 본사에서 자신이 개발한 '세벌식 자판의 기술사용 허락계약서' 에 사인했기 때문이다.

쉽고 빠른 자판 (字板) 개발을 위해 평생을 바친 사람으로는 공병우박사가 있다.

그는 세벌식 자판이 능률적이라는 사실을 과학적으로 증명했지만 보급하는데는 실패하고 눈을 감았었다.

안과의사 후배로, 그리고 공박사의 전기를 읽고 감명받아 개발에 뛰어든지 2년여. 이제서야 세벌식 자판이 본격적으로 세상에 선보인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뭉클해지는 것이다.

세벌식은 초성.중성.종성으로 구성된 자판이다.

가장 큰 장점은 한글창제의 원리를 살려 초.중.종성을 동시에 친다는 것. 반면 현재 우리가 사용하는 표준 두벌식 자판은 영문자판에 그대로 자음과 모음을 대입해 만든 것이기 때문에 순서대로 치도록 돼 있다.

자판 성능의 우열은 속도에서 판가름난다.

예를 들어 '안녕하십니까' 를 칠 때 두벌식은 열다섯번 자판을 두드려야 하지만 세벌식은 단 여섯번의 동작으로 단어를 완성한다.

속도가 50% 이상 빠르다.

崔박사는 이를 동시에 여러 음을 누르는 '피아노 건반' 에 비유한다.

또하나의 특징은 축약기능. '고맙습니다' '입니다' 처럼 자주 쓰는 인사말.조사.수사등은 앞글자의 초성 2개만 치면 단어가 뜬다.

또 병원이나 경찰서.법원등 전문분야에서 흔히 쓰는 용어 또는 같은 문장도 한번의 키조작으로 단어와 문장이 반복된다.

2년여라는 짧은 개발기간이었지만 그는 두달에 한번꼴로 좌절을 반복했다.

컴퓨터주변기기 전문가 5명과 함께 경기도수원에 작은 사무실을 얻은 것이 85년초. 우선 아주대 공대에 글자 집성처리기능에 대한 기초연구를 맡겼다.

가능하다는 회신이 왔다.

종래 자판을 누를 때 글자가 화면에 뜨는 방식에서 손을 뗄 때 글자가 뜨는 방식을 채택하라는 것이었다.

다음은 기존 두벌식 사용자의 거부반응 극복. 그는 종래 자판의 순서를 그대로 사용하되 스페이스 바를 분리해 받침이 되는 종성들을 배열했다.

이를 위해 서울대 국문학과에 많이 쓰는 종성의 빈도조사를 의뢰했다.

지난해 여름 기술개발이 마무리되자 그는 특허출원을 마치고 자체 생산을 시도했다.

그러나 결과는 보기 좋은 패배. 공박사의 얼굴을 떠올리며 그는 다시 빚을 얻어 생산원가 절감기술에 도전했다.

그리고 드디어 올해초 자판회로를 컴퓨터칩 대신 다이오드로 대체하는 기술에 성공해 3월 전문용어 축약기능을 포함한 기술을 특허출원하기에 이른 것. 삼성전기와의 계약에서 그가 받는 기술료는 대당 1천원. 현재 월 소비량 25만~30만대의 30%만 점유하더라도 그가 받는 돈은 1억원에 이른다.

그러나 그는 "연구를 그치지 않고 한자 모아치기 기능을 개발해 중국특허도 출원할 계획" 이라고 힘을 주었다.

고종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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