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 한.일전 이모저모…침울한 도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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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한.일 축구전이 끝난 뒤 도쿄 (東京) 거리는 일요일의 한산함에다 축구 역전패까지 겹쳐 극도로 침울한 분위기. 역전승의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한 한국 응원팀 1천여명이 국립경기장을 돌며 뒤풀이를 하는데도 길을 지나는 행인들은 이를 물끄러미 쳐다보거나 애써 외면하는 모습. 경기가 끝난 뒤 도쿄 국립경기장의 일본 관중들은 역전패가 믿어지지 않는듯 한동안 자리를 뜨지 못했다.

TV로 경기를 지켜본 사토 요시오 (佐藤義夫.35.회사원) 는 "객관적 전력은 일본이 앞서 있다고 했는데…" 라고 말끝을 흐리다 "한국과의 경기때마다 일본 선수들이 위축된다는 징크스가 이번에도 들어맞았다" 고 아쉬워했다.

이날 도쿄 거리는 경기가 진행되는 동안 인적이 드물 정도로 한산했으나 일본팀이 먼저 선취골을 넣자 TV를 시청하고 있던 식당.기차역등에서는 한때 환성과 박수가 터져나오기도.

휴일이면 밤늦게까지 흥청거리던 신주쿠 (新宿) 와 시부야 (涉谷) 도 비가 간간이 뿌리는데다 손님들의 발길이 뜸해 이날은 가게들이 일찍 문을 닫는 모습. 대중술집 체인인 시라기야의 한 종업원은 "가뜩이나 경기가 침체돼 우울한 밤거리 분위기를 축구 승전보가 말끔히 씻어주기를 기대했다" 며 아쉬움을 못내 감추지 못했다.

일본 TV방송국들도 일본팀이 이길 경우에 대비해 각종 특집 프로그램을 준비해 놓았다가 슬그머니 이를 취소. 경기가 끝난뒤 일본 신문.방송들은 "한국의 붉은 벽을 넘기가 이렇게 힘든가" 라고 애석한 한판이었음을 지적. 일본 매스컴들은 일단 한국팀이 완벽하고 깨끗한 승리를 거뒀다고 인정했는데 TBS는 "일본이 선취골을 빼낸 뒤 더욱 강력히 밀어붙였어야 했다" 며 "후반 들어 체력과 끈기에서 한국에 밀렸다" 고 패인을 분석. 일본 방송들은 경기가 끝난 뒤에도 느린 화면으로 골이 나는 장면을 반복해 보여주면서 카자흐스탄과의 다음 경기를 위해 패인을 분석하는데 열성. TBS는 양측 감독의 기자회견을 중계하는 과정에서 "후반 들어 차범근감독이 체력이 떨어진 두명을 교체한 것이 주효했다" 며 한국이 전략에서 승리했다고 지적했다.

도쿄 = 이철호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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