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부도에 휘청대는 대출은행들…해외신용도 하락 외화자금난등 3중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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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기아는 그렇다 치고 이제부터는 은행을 걱정해야 할 판이다.

기업의 부실화가 은행으로 옮겨붙기 시작했다.

기아만이 문제가 아니다.

한보.삼미.대농.진로로 부실여신은 계속 쌓여만 왔다.

상반기 결산때 10개 은행이나 적자를 낸 것도 이때문이다.

연말에는 기아로 인한 손실이 결산에 반영된다.

기아에만 5조5천억원에 가까운 대출원리금이 묶여있어 은행들의 올해 장사는 일단 결딴난 셈이다.

요즘은 담보도 별로 중요하지 않다.

물론 은행감독원 규정상 담보가 있으면 대손충당금 적립비율이 20%로 낮아지기는 한다.

그나마 기아그룹의 경우 은행들이 담보를 챙기고 있는 부분은 대출원금의 평균 32%에 불과하다.

이 부동산담보를 처분하더라도 원금을 모두 되찾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매절차를 거치는 동안 값은 자꾸 깎여 심하면 대출원금 밑으로 내려가기도 한다.

또 시간도 오래 걸려 그만큼 이자손실도 커진다.

통계상 법정관리에 들어간 기업의 부동산담보를 처분하면 잘해야 현재 가격을 기준으로 한 원금의 60%정도를 되찾는다고 한다.

게다가 은행들은 당장 연내에 대손충당금을 쌓아야 한다.

대손충당금이 은행 외부로 빠져나가는 돈은 아니지만 은행수지 (收支)에 큰 부담을 준다.

열심히 장사해 기껏 벌어놓은 이익금을 대손충당금 쌓느라 다 까먹을 곳도 많다.

몇몇 은행은 벌써 쌓았어야 할 대손충당금을 1백% 못쌓아 내년까지 일부를 유예받고 있다.

은행들은 대농.진로.기아에 묶인 불건전 여신에 대한 대손충당금을 아직 장부에 올려놓지 않았다.

그런데도 상반기에 벌써 10개 은행이 적자를 냈다.

이를 다 반영하는 연말에 수지악화는 더 심해질 것이다.

이에 따라 내년초부터는 해외 신인도 문제가 다시 현안으로 등장하게 됐다.

적자가 현실화되면 당장 은행의 신용등급이 떨어진다.

제일은행의 경우 한 등급만 더 내려가면 해외차입이 거의 불가능해진다.

한번 분위기가 바뀌면 지금 괜찮다는 은행도 어려워지기는 마찬가지다.

이때 국내 금융기관은 다시 극심한 외화자금난을 겪게될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정부는 은행이 기아에 추가지원을 해 입은 부실에 대해서는 지원해주지 않겠다고 밝혔다.

은행감독원도 은행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대손충당금 적립기준을 손질하지 않기로 했다.

금융시스템의 안정을 위한 제도이므로 당장의 수지개선을 위해 원칙을 흔들 수는 없다는 입장이다.

은행들이 이런 곤경에서 빠져나오는데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은행도 기업 못지않게 뼈를 깎는 자구노력을 해야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것도 이때문이다.

남윤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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