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 채권단, '김홍선회장' 살리기에 불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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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기아사태가 부도유예시한 (29일) 을 코앞에 두고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고 있다.

기아측이 22일 전격적으로 던진 화의 (和議) 카드를 정부와 채권단이 거부하겠다는 방침을 정함에 따라 하루만에 상황이 반전된 것이다.

청와대 경제수석을 비롯해 정부당국자들은 기아의 화의제의에 노골적으로 불쾌감을 표시하고 있는 분위기다.

화의신청이란 기아의 승부수가 자칫 자충수로 변하고 있는 것일까. 이제 관심의 초점은 크게 두가지다.

정부와 채권단이 왜 거부로 돌아섰느냐는 점과 그렇다면 기아는 어떻게 될 것이냐는 점이다.

◇ 왜 거부했나 = 정부와 채권단의 입장은 23일 기자간담회를 자청한 김인호 (金仁浩) 경제수석의 발언 속에서 선명하게 드러나고 있다.

채권.채무관계가 고도로 복잡하게 얽혀 있는 기아그룹 문제의 속성상 화의제도 적용은 적절치 않다는 것이 첫번째 이유다.

화의를 하고 싶어도 1백43개에 달하는 채권단의 반발로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며 발등의 불인 해외차입상환문제등 난제들이 한두가지가 아니라는 것이다.

더 중요한 이유는 정부와 채권단이 기아가 화의신청을 낸 속셈이 '기아 살리기' 보다 '김선홍 (金善弘) 회장 살리기' 에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金수석은 추석을 전후한 정부.채권단과 기아측과의 접촉과정에서 ▶기아자동차는 정상화하되 아시아자동차.기아특수강등 나머지 계열사는 매각 ▶金회장은 일선 후퇴쪽으로 잡혔던 기아 해법이 '화의신청' 으로 돌변한 배경이 오직 金회장체제 유지를 위한 결정이었던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그의 견해에는 현재 홍콩 국제통화기금 (IMF) 연차총회에 나가 있는 강경식 (姜慶植) 부총리나 은행장들도 전적으로 공감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 기아는 어떻게 되나 = 화의가 무산된다는 것을 전제로 하면 두갈래 해법을 예상할 수 있다.

하나는 기아측이 당초 정부및 채권단과 논의하던 방안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기아차 정상화와 金회장 일선 퇴진, 나머지 계열사 정리를 맞바꾸는 방안이다.

이 방법은 사실상 기아측의 '백기 (白旗)' 를 뜻하나 채권단의 추가 자금지원등이 나갈 수 있어 국내외에 미치는 파장은 비교적 축소될 수 있다.

기아측이 끝내 이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기아측은 자동차 판매수입등으로 쏟아지는 어음을 막아내다 결국 도산하거나 아니면 법정관리를 택할 수밖에 없다.

어느 쪽이든 金회장의 입지는 거의 사라진다.

이미 정부나 채권단에서는 법정관리 카드를 거론하고 있다.

채권단 입장에선 그동안 기아 해법의 핵심 변수였던 대외 신용도 문제도 기아측이 일방적으로 화의신청을 함에 따라 오히려 부담을 던 것으로 보고 있다.

부도→법정관리라는 수순이 기아나 관련 금융기관들의 대외신용도에 치명타를 가할 수 있었기 때문. 그러나 외신들은 기아의 화의신청 소식을 타전하는 과정에서 "기아가 사실상 부도상태에 빠졌다" 고 해석했다.

따라서 이제 대외신용도 문제는 '엎질러진 물' 이 된 만큼 더 편한 입장에서 법정관리를 택할 수 있게 된 셈. 결국 기아가 승부수로 던진 화의신청이 법정관리를 앞당기는 '자충수' 로 바뀌고 있는 것이다.

손병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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