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운의 야구천재' 설종진 재기…다리화상 딛고 투수 변신 성공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2면

그는 "내가 마운드로 걸어 올라가는 것이 아니고 마운드가 내게로 다가오는 것같았다" 고 말했다.

그만큼 다시 찾은 마운드의 감격은 컸다.

'비운의 야구 천재' 설종진 (24.현대) 이 타자가 아닌 투수로 재기의 마운드에 섰다.

설종진은 19일 해태와의 시즌 마지막 경기에서 8회초 조웅천에 이어 팀의 네번째 투수로 마운드에 올랐다.

5 - 1로 뒤지고 있는 상황에서 그가 마운드에 오른 것은 큰 의미가 없었다.

그러나 91년 쟁쟁한 고교야구 스타들을 제치고 최고의 유망주로 평가받던 그가 프로에 데뷔한지 2년만에 타자가 아닌 투수로 재기의 몸부림을 거쳐 마운드에 섰다는 것은 또 하나의 '인간 승리' 를 예고하는 것이다.

그는 91년 신일고 재학시절 박찬호.조성민.임선동이 버틴 청소년대표팀의 주장이었다.

봉황대기.황금사자기에서 각각 최우수선수상을 따낸 발빠르고 정확한 타격의 외야수였다.

OB의 유혹을 뿌리치고 중앙대에 진학한 그에게 불운의 그림자가 다가온 것은 92년 말. 학교 운동장의 잡초를 제거하다 불이 몸에 옮겨붙어 양쪽 다리에 큰 화상을 입었다.

그때 병상의 그에게 가장 먼저 달려온 것은 절친한 친구 박찬호였다.

가정형편이 어려웠던 둘은 청소년대표팀에서 가장 친한 친구였다.

좁은 침대에서 나란히 밤을 지새며 둘은 "반드시 성공하자" 는 눈물의 맹세를 했다.

그리고 그 약속대로 그는 1년의 투병끝에 부상을 딛고 우뚝섰다.

지난해 중앙대를 졸업하고 현대에 지명된 그는 1년을 타자로만 보냈다.

그러나 올해 하기룡 투수코치가 "투수를 해보겠느냐" 는 제의를 했고 미련없이 방망이를 버리고 글러브 하나만을 택했다.

다시 1년을 2군에서 보낸 그는 지난 15일 1군에 등록됐고 19일 처음으로 1군 마운드에 섰다.

이날 그의 투구수는 13개뿐. 그러나 그의 타고난 감각과 센스를 아는 모든 사람들은 "우리는 거인의 걸음마를 보고 있는지도 모른다" 고 입을 모았다.

인천 = 이태일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