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술 마시는 사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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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신라가 삼국통일을 성취했을 때의 마지막 주인공이었던 김춘추 (金春秋) 와 백제 의자왕 (義慈王) 은 똑같이 대단한 술꾼들이었다.

다른 점이 있다면 의자왕이 주로 당 (唐) 나라에서 들여온 고급술을 즐겼던 반면 김춘추는 나라 안에서 빚은 술만 마셨다는 점이었다.

그래선지 의자왕은 조금만 마시고도 금세 취했지만 김춘추는 말술을 마시고도 요즘의 음주운전처럼 말을 타고 내달리기 일쑤였다고 한다.

술이 삼국통일과 백제의 패망에 직접적으로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는 알 수 없으되 이들 두 사람이 대단한 술꾼들이었던 탓에 '망해도 술이요, 흥해도 술' 이란 속담에는 이들의 일화가 곧잘 인용된다.

이것이 바로 술이 가지는 양면성이다.

'사기 (史記)' 에 나오는 '주유성패 (酒有成敗)' 곧 '술은 안 될 일을 되게 하기도 하고, 될 일을 안 되게 하기도 한다' 는 말도 비슷한 맥락이다.

또한 술은 잘만 마시면 백약중의 으뜸 (百藥之長) 이요, 잘못 마시면 사람을 미치게 하는 약 (狂藥) 이란 말도 술의 극단적인 양면성을 대변한다.

우리 전통사회에서 술을 보통 약주 (藥酒) 라 부르기 시작한데는 이런 유래가 전한다.

조선조 초기부터 가뭄이 계속돼 국민들이 고통을 겪자 왕들은 툭하면 금주령을 내렸다.

하지만 왕족을 비롯한 상류사회에서 술을 마시지 않을 수는 없었으므로 '이것은 술이 아니고 약' 이라며 마셨기 때문에 약주란 명칭이 생겨나게 됐다는 것이다.

지금에 와서야 술은 아무라도 마실 수 있지만 그 극단적 양면성을 의식하며 마시는 사람은 거의 없다.

술을 마시는 이유에 대해서도 상반된 양면이 나타난다.

기뻐도 술이요, 슬퍼도 술인가 하면 즐거워도 술이요, 괴로워도 술이다.

살아가면서 겪는 모든 일들이 술 마시는 원인을 제공하는 것이다.

이유도 많을 뿐만 아니라 마시기 시작하면 으레 폭음으로 이어지니 술로 인한 폐해가 이만저만이 아닐 것은 뻔하다.

보건사회연구원의 한 연구위원 발표에 따르면 음주로 인한 경제사회적 손실은 생산성 감소와 의료비 등을 포함해 연간 10조원에 달한다고 한다.

곧 추석연휴에 들어가면 즐거워서 마시는 술, 세상 돌아가는 꼴이 한심해서 마시는 술 등 그 이유도 더욱 다양할 것이다.

술 마실 때마다 개개인의 경제사회적 손실을 돈으로 환산한다면 뭔가 느끼는게 있지 않을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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