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출판] 'The Working Poor'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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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Working Poor(근로 빈곤층): Invisible in America(보이지 않는 미국의 근로빈곤층)
David K. Shipler
Alfred A. Knopf, 336쪽, 25달러

미국은 풍요의 나라다. 1인당 국민소득 3만7600달러보다도 월마트나 대형 쇼핑몰에 산더미 같이 쌓여 있는 상품들이 더 인상적이다. 코카콜라를 가득 실은 트럭의 덩치나 음식점에서 시키는 1인분 식사량도 같은 이미지다. 그런데도 여느 사회와 마찬가지로 가난한 사람들은 있다. 열심히 일해도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들, 이른바 근로빈곤층이 무려 3500만명에 이른다고 저자 데이비드 쉬플러는 말한다.

뉴욕타임스 기자로 일했고, 『아랍인과 유대인』이란 책으로 퓰리처상도 받은 그는 오래 전부터 빈곤 같은 사회적 이슈에 매달려왔다. 근로빈곤층 문제는 곳곳에 넘쳐 흐르는 풍요로움과 보다 화급한 실업자 문제에 가려 눈에 잘 띄지도 않는다. 근로빈곤층은 하루 종일 일하지만 아메리칸 드림은 아득히 멀기만하다. 이들에게 시간당 7달러의 임금이면 좋은 편이고 건강보험은 사치품으로 분류된다.

저자는 이들이 처한 현실을 파악하기 위해 미 전역을 돌아다니며 수십명을 인터뷰했다. 다양한 목소리를 듣기 위해 지역과 인종과 직업을 안배했다. 노스캐롤라이나주의 대농장에서 일하는 떠돌이 근로자, 노임을 착취 당하는 뉴햄프셔주의 봉제근로자, 오하이오주의 플라스틱 공장 공원, 로스앤젤레스의 뜨거운 주방에서 일하는 멕시코계 불법 이민자, 워싱턴에서 허드렛 일을 하는 흑인 등등.

이들이 고단하게 삶을 살아가는 얘기를 들으면서 쉬플러는 이들이 사회보다는 자신을 탓하고 있다는 특이한 사실을 발견했다. 이에 대해 그는 ‘미국은 기회의 땅’이라는 구호가 이들에게 이런 생각을 갖게 만든 것 같다고 분석했다. 자신이 못나 기회의 땅에서도 빈곤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한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많이 배우지 못한 이들은 먹고 사는 문제에 매달려 경제나 사회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잘 모른다. 상황을 분석하고 체계적으로 대응하는 능력이 부족하다. 그래서 많은 문제를 자기 탓으로 그냥 수용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 저자의 진단이다.

한 예로 그는 보스턴의 한 종합병원에서 만난 어린이 천식환자를 든다. 기관지에 생긴 심각한 이상은 그 아이가 살고 있는 주거환경 때문에 생긴 것이었다. 먼지투성인데다 벌레와 진드기가 득실대는 셋집이었다.이런 환경을 그대로 둔 채 병을 고치는 일은 어림없다고 판단한 의사들이 집주인에게 청소와 방역을 요구했으나 듣지 않았다. 결국 의사들이 나서 변호사를 고용해 이 문제를 풀었다고 한다. 사회 구성원 모두가 함께 나서야 사회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메시지다.

지은이는 근로빈곤층의 문제는 개인적인 한계에서 비롯된 것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해결은 사회가 나서야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그는 지금 미국에는 이들의 빈곤탈출을 돕는 ‘기술’이 실종된 상태인데 그것을 찾아내야 한다고 덧붙인다. 문제를 사회적인 시각에서 보는 진보 성향의 민주당과 개인적 차원을 강조하는 보수적인 공화당이 따로 놀아서는 안된다는 지적이다. 둘이 각각 갖고 있는 조각 그림을 다 같이 맞춰야 하나의 그림이 완성된다는 것이다.

쉬플러는 “정부의 불법 이민자 단속은 이들을 이곳에서 다른 곳으로 몰뿐 뾰족한 대책이 되지 못한다”며 “이 땅에 발을 디딘 이민자들이 이사 다니는 걸 중단할 때 비로소 미국 사회에 편입되는 것”이라고 말한다.

저자가 근로빈곤층 문제의 해결을 위해 제시하는 해결책 중 하나는 직업훈련이다. 특별한 기술이 없는 한 단순하고 수입이 낮은 일을 계속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근로빈곤층의 절반이 아이를 키우며 혼자 사는 여성이라고 말하는 그는 가정과 사회가 여성들에 대한 각종 차별을 막지 못하면 빈곤문제를 차단하기 어렵다고도 지적한다. 아이가 딸린 여성들을 위해서는 탁아시설의 확대가 필수다. 그는 미국 성인 중 14%가 수표 몇 장을 은행에 입금할 때 덧셈을 할 줄 모르고, 약병에서 하루 몇 알을 꺼내먹어야 할지 계산하지 못한다며 교육의 필요성도 새삼 강조한다.

지난 2월 출판된 이 책은 그동안 언론에서 많이 다뤄졌다. 워싱턴포스트에 실린 한 서평은 “이 책은 국회의원은 물론 유권자들도 모두 읽어야 한다”고 충고한다. 모든 시민들이 사회빈곤 문제에 관심을 갖고 정치인들이 해결책을 도출해 내야 한다는 뜻이다. 가난의 대물림이 이슈가 되고 있는 우리 사회도 귀담아 들을 말이다.

뉴욕=심상복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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