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달 못보는 한가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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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전통적으로 동.서양의 달에 대한 관념에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

우리 민족을 비롯한 동양에서는 우주론과 인생관, 그리고 생활습속 등에 걸쳐 매우 큰 의미를 지니는 것으로 간주해 왔으나 서양에서는 숭배의 대상이면서 동시에 공포의 대상이었다.

달이 공포의 대상이었음을 뒷받침하는 것이 대부분의 서양 나라에서 전해 내려오는 '늑대의 전설' 이다.

늑대가 출몰한 적이 있는 곳이면 어디서나 만월 (滿月) 때 늑대로 변한 남녀가 출몰해 가축과 인간을 잡아먹는다는 무서운 이야기다.

달에 대한 공포심 때문에 특히 보름달이 떠오르기만 하면 폭력행위와 정신이상 증세를 보이는 사람과 숨을 거두는 중환자가 많아진다는 사실을 입증해 낸 학자들도 적지 않다.

그래서 '늑대의 전설' 을 달 때문에 머리가 이상해진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의 변형이라고 보기도 한다.

실제로 소설 '지킬박사와 하이드씨' 의 모델이 된 찰스 하이드와 금세기 중반 이후의 흉악한 살인범들이 대개 보름달이 떠올랐을 때 범행을 저질렀다는 사실이 보고된 일도 있다.

하지만 서양의 과학자들 가운데는 달이 광란과 범죄를 일으킨다는 것은 옳지 않다고 보는 사람도 있다.

오히려 달의 영향과 달이 의미하는 것을 억압해 왔기 때문에 사회적 긴장과 불협화음이 생겨나고, 참혹.기괴한 사건이 일어난다고 봐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곤 이렇게 덧붙인다.

"현대의 절망적 상황은 달빛 속에서 더욱 잘 보이지 않겠는가.

" 그렇게 보면 우리 민족은 먼 옛날부터 달, 특히 보름달을 '풍요와 번영과 생명력에 대한 믿음이자 꿈' 의 긍정적인 측면으로만 받아들여왔기 때문에 광란이나 범죄와는 상관없는 보름달을 즐길 수 있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태양과 달리 달은 어둠과 공존하면서 어둠의 일부를 밝혀주기 때문에 오히려 그 존재가치가 더욱 돋보이지 않겠느냐는 것이 달에 대한 우리의 관념이다.

그러나 올 한가위엔 날씨가 흐려 보름달을 볼 수 없으리라는 소식이다.

보이는 것, 들리는 것이 모두 우울한 이야기들뿐이니 휘영청 떠오른 밝은 보름달이 울적한 마음들을 얼마쯤 달래줄 수도 있으련만. "보름달이 뜨지 않는다면 오늘의 절망적 상황을 제대로 비추지 못할테니 그나마 다행이 아닌가" 하는 넋두리로나 위안을 삼아야 할는지 심회가 자못 착잡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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