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의 힘인가, 우연의 일치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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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2일 여야가 미디어 법안을 비롯한 쟁점 법안 처리에 대한 극적 합의를 이룬 뒤 여의도에선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의 ‘역할론’이 화제가 됐다. 여야 협상의 결과가 이날 박 전 대표가 나름대로 내놓은 중재안과 맥락을 같이했기 때문이다. 그는 이날 김형오 국회의장 중재안에 ‘협상 시한을 명기해야 한다’고 첨언한 뒤 민주당 측에 양보를 촉구했다. 협상의 결과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래서 ‘우연의 일치’란 분석 가운데서도 “박 전 대표의 정치력이 증명됐다”는 해석도 나온다.

박 전 대표의 발언을 전해 들은 박희태 대표가 “정말 옳은 말씀이고 참 고맙다”고 말한 것은 이런 분위기를 반영한다.

이 같은 평가가 나오는 것은 무엇보다 지금까지 미디어 법안에 부정적인 것으로 비쳤던 박 전 대표가 농성 의원들을 격려하고 처리 방향에 대한 제언까지 함으로써 여권의 단결을 과시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난 1월 국회엔 말미에 나온 박 전 대표의 비판적 발언으로 한나라당의 ‘속도전’ 계획이 난항에 부닥쳤었다. 그러나 이날 박 전 대표의 발언은 평소 그를 ‘여당 내 야당’으로 바라봤던 민주당엔 압박이 될 수밖에 없다.

이에 대해 박 전 대표의 측근인 이정현 의원은 “박 전 대표가 특별히 이런 결과를 만들려고 했다기보다는 평소 정치철학을 강조하다 보니 맞아떨어진 것일 뿐”이라고 말했다. 김무성 의원은 “박 전 대표가 야당에 분명한 선을 그어 줬다는 점에서 협상이 급물살을 타게 된 것 같다”며 “우연적인 부분도 있지만 박 전 대표가 상대적으로 객관적 입장에서 국민 여론을 지켜보고 있어 더 큰 신뢰를 받는 측면도 있다”고 분석했다. 친이 성향의 나경원 의원도 “박 전 대표의 발언이 흐름을 잘 이끌어 줬다”고 평가했다.

민주당 비공개 의총에선 최종 협상안을 두고 “박 전 대표를 도와주는 결과”라는 불만이 나왔다고 한 관계자가 전했다.

그러나 이날 박 전 대표 발언에 대한 불만도 적지 않았다.

수도권의 한 중진 의원은 “정치 지도자라면 흐름을 주도해야 한다. 그러나 박 전 대표는 언제나 상황이 끝날 때쯤 사후적 논평으로 어려움을 피해가는 측면이 있다” 고 말했다.

이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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