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대통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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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만약 시험을 치르게 해서 대통령을 선출한다면 나도 대통령이 될 자신이 있다."

어떤 시험에서건 한번도 실패한 적이 없다는 3공 시절의 한 관료가 농반진반으로 한 말이다.

그 관료뿐만 아니라 소위 '천재' 소리를 듣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비슷한 생각을 가질 법하다.

아닌게 아니라 때마다 시끄럽고 골치아픈 선거과정을 겪어야 하니 차라리 후보들로 하여금 일정한 과목의 시험을 치르게 해서 성적이 가장 뛰어난 사람을 당선자로 결정하는게 속편한 방법이 아니겠는가 생각하는 국민도 없지는 않을 것이다.

'시험' 의 개념은 다르지만 정치지도자로서의 자질을 검증하고 확인하는 '시험' 을 치르게 해야 한다는 이론은 이미 고대사회에서부터 제기됐다.

2천5백년전 그리스 철인 플라톤은 정치를 하려는 사람들은 정치에 필요한 자질을 구비하고 있는지를 판별할 수 있는 선발과정을 거쳐야 한다고 주장했고, 독일의 사회학자 막스 베버는 이를 이론적으로 체계화했다.

영국 총리를 지낸 윈스턴 처칠은 영국의 역대 총리 가운데는 '무능한 엉터리' 들이 많았다며 총리가 되려는 사람은 '자질 시험' 을 거치게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렇다면 정치를 하려는 사람에게 필요한 자질이란 과연 무엇일까. 견해는 여러가지지만 대개 용기와 확신, 자신감과 열정, 의지와 도덕성 따위로 집약된다.

정치인, 특히 정치지도자가 되려면 이들 각 항목에서 최소한의 기본적 수준은 갖춰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시험' 을 치르게 하지는 않더라도 교육이나 수양을 통해 이런 것들을 체득하게 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하지만 그런 주장들은 어디까지나 이상론 (理想論)에 불과할 따름이다.

그런 자질들을 골고루 갖춘 사람들이라면 정치를 기피하게 마련이고, 설혹 선거를 통해 대중의 심판을 받는다 해도 성공할 확률이 희박하기 때문이다.

정치학에서의 '자질론' 이 이상적인 정치인상 (像) 을 그리는데서 그치고 마는 것도 그 까닭이다.

고려대가 새학기부터 행정학과에 개설한다는 '대통령학' 도 대통령이 되기 위한 자질론같은 것이 포함되겠지만 현실정치에 어떻게 반영될는지는 미지수다.

오히려 대통령이 되겠다는 사람들로 하여금 그 강의를 듣게 해 자신이 얼마나 적합한 인물인지 스스로 판단케 하는 것이 효과적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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