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 속옷 가게에 남자 종업원만 일하는 사우디

중앙일보

입력

보수적 이슬람 국가인 사우디아라비아가 여성용 속옷 판매원 고용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고 BBC 방송이 25일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여성들의 사회활동과 취업을 금지하는 이슬람 율법에 따라 사우디에선 거의 모든 여성용 속옷 가게가 남자종업원을 고용하고 있다. 남자들이 여성 고객에게 '은밀한 속옷'을 팔아야 하는 어색한 상황이 연출되고 있는 것이다. 특히 가족이나 남편 이외의 외간 남자와는 신체적 접촉은 물론 같은 장소에 있는 것조차 금하고 있는 보수적 국가에서 여성들이 남자 직원들로부터 속옷을 사는 데 따르는 불편함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라는 것.

대다수 여성들은 "남자 종업원들이 속옷의 치수나 색깔, 디자인 등에 대해 조언할 때 상당한 수치심을 느낀다"고 불편을 호소하고 있다. 특히 남자 직원이 여성들의 몸을 어 보며 '그건 손님에게 너무 큰것 같은데요', '이 디자인이 손님에게 잘 어울리겠네요' 하는 식으로 충고를 할 때면 당황스러워 몸둘바를 몰라 한다고 한다. 물론 물건을 팔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이런 조언을 해야 하는 남자 종업원도 불편하기는 마찬가지라는 불만이 많다.

종교 경찰은 또 속옷 가게에 '핏팅 룸'을 설치하는 것도 금지하고 있다. 그래서 여성 고객들은 대충 어림잡아 속옷을 산 뒤 근처 공공 화장실에서 입어 보고 맞지 않으면 다시 가서 물리는 번거로움을 감수하고 있다. 그나마 집에 돌아온 뒤 뒤늦게 디자인이 맘에 들지 않거나 크기가 맞지 않는 걸 발견하면 물릴 수도 없다.

이같은 불편함 때문에 일부 여성 단체에선 속옷 가게의 직원을 여성들로 바꾸자는 운동을 펼치고 있다. 이 운동을 주도하고 있는 다르 히크마 여대 금융학과 여교수 림 아사드는 "여자들끼리도 조심스런 얘기를 낯선 남자 종업원과 하도록 강요하는 상황은 문명 국가의 기준에서 보면 야만스러운 일"이라며 "여성 속옷 가게의 종업원을 남자에서 여자로 서둘러 바꿔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사우디 정부는 2006년 옷이나 악세사리, 속옷 등의 여성용 상품을 파는 가게에서는 여자들이 일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법률을 채택했지만 아직 제대로 실행되지 않고 있다. '여성은 집에 있어야 한다'는 의식이 여전히 강한 데다 실업률이 13%에 이르는 상황에서 여성들의 취업을 허용할 경우 남자들이 일자리를 찾기가 더욱 어려워 질 수 있다는 여론이 만만찮기 때문이다.

유철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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