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린기행] 11.어우동…충북 단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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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1면

꽃이 나비를 찾는다.

"선택당하기보단 스스로 선택하겠다" 는 여인의 치마아래 양반들의 체면이 무참하게 구겨진다.

조선시대 사대부집 규수였지만 기생으로 활동하며 성 (性) 의 자유를 구가한 여인 어우동. 이장호 감독은 칠거지악등 여성의 암흑기에 등장한 '자유부인' 으로 '어우동' (85년9월개봉.태흥영화사) 을재창조 했다.

소백산과 남한강을 낀 충북 단양 (丹陽) 군. 신선들의 수련.완성과정을 뜻하는 도교경전 글귀인 '연단조양 (鍊丹調陽)' 의 두 글자를 지명으로 삼았다.

어우동 (이보희) 이 암행을 나온 성종 (윤순홍) 과 화끈한 사랑을 나눴던 중선암 (中仙岩) .여름철에도 손이 짜릿한 차가움을 선사하는 이곳은 단양8경의 하나로 순백의 암석들이 평상을 차려놓은 듯하다.

평평한 바위는 피서객들이 더위를 식히기에 안성맞춤이다.

풍덩풍덩 물장구를 치는 개구장이들에게는 더없는 놀이터이기도 하다.

성종의 숙부이자 남편인 태산군 (김형섭) 의 학대에 못이긴 어우동이 자살을 시도하다 구출됐던 사인암 (舍人岩) .고려말 유학자인 우탁 (禹倬) 선생이 사인벼슬을 할 때 묵었다는 이 바위산은 선비들이 새긴 각자 (刻字) 들과 바둑판.장기판이 아직도 선명하다.

양반들이 기생들의 속치마에 시 한수를 적어주고 수작 (酬酌) 하는소리가 들려 오는 듯하다.

그 질펀한 놀이판 옆에선 가마에 먹거리 대느라 허리가 휘어지던 하인들과 몸종들의 한숨소리도 들린다.

밝음과 어둠은 늘 교차하듯이 단양에도 개발로 인한 그늘이 있었다.

85년 충주댐 건설로 집과 논밭이 삽시간에 물에 잠겼다.

하선암.중선암.상선암은 95년 도로가 새로 정비되면서 보는 풍광이 옛날과 사뭇 다르게 바뀌었다.

단양읍은 수몰돼 형체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대신 신단양이란 도시가 도담삼봉옆에 생겼다.

시멘트 원료인 석회석 채굴로 신선들의 요람이던 산들도 쉴새없이 요동을 쳐야만 했다.

변태 성욕자인 남편과 대를 이을 손주 낳기에 혈안이 된 시어머니에게 밤낮으로 시달린 어우동처럼. 어우동이 태산군의 살해명령을 받은 충복들을 피해 도망치던 강선대 (降仙臺) .표창잡이 갈매 (안성기) 와 함께 생을 마친노동동굴. 강선대는 물에 잠겼고 호호 입김을 불 정도로 서늘했던 노동동굴도 폭주하는 인파로 더워지고 있다.

지난해 단양을 찾은 관광객은 약 3백80만명. 아직까지 물과 산의 시원함과 아름다움을 찾는 이들이 대부분이지만 색다른 소일거리를 찾아낸 사람도 있다.

서울에서 사업을 하다 15년째 단양군청에서 일하는 김동식씨 (43) .틈나는대로 바위에서 탁본을 뜨고 사진을 찍으며 역사책을 뒤적인다.

단양에는 숨겨진 비밀이 많아 새 글귀를 찾아내 음미하고 되새기는 즐거움이 쏠쏠하단다.

▶취재도움 = 단양군 문화공보실 (0444 - 20 - 1208) , 으뜸과 버금 (비디오전문점 02 - 885 - 2552) 단양 = 송명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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