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태욱 대기자의 경제 패트롤] 농업도 블루오션 될 수 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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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이달 초 겨울휴가차 남녘을 다녀왔다. 따뜻한 날씨 때문인가, 몇 해 전 완도와 다리로 이어진 신지도 해변 모래 둔덕에서 냉이 무더기를 보고 몇 움큼 뽑아다 살짝 데쳐 초고추장에 무쳐먹으며 봄 향기를 미리 느껴본 기억이 새롭다.

모든 먹거리가 제철, 제 땅에서 난 것을 으뜸으로 치는 건 고금이 마찬가지다. 그렇다 해도 그 다양한 입맛을 제철, 제 땅에서 다 맞출 수는 없다 보니 온실이며 비닐하우스처럼 계절에 무관한 영농 방법들이 널리 보급됐고, 그도 부족하면 다른 나라에서 사다 먹는 것이 요즘 우리를 포함한 웬만큼 사는 나라들의 모습이겠다.

세계 경제가 어려워지면서 기존 수주 물량이 많았던 조선을 제외한 거의 모든 상품 수출이 올 들어 40% 안팎 감소하는 어려운 상황을 맞고 있다. 하지만 농수산식품의 경우는 조금 다르다. 역시 수출 감소를 면치는 못했지만 지난달 -6%라는 감소폭이 다른 공산품에 비해 현저히 적을 뿐더러 일본에 대한 수출은 11.1%라는 상당한 증가세를 유지했다. 더욱이 달러 베이스로 증감을 따진 것인 만큼 그간의 엔고를 감안하면 수출 농가의 원화 환산 소득은 훨씬 더 컸을 게다.

최근 정부가 밝힌 기업-또는 기업형-영농에 대한 정책적 지원 방침에 대해 일부 관련 학계나 시민 단체에서 국내 농업 기반이 뿌리째 흔들릴 것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농업이 국내 식량 수요에 안정적으로 대응하는 것을 기본 목표로 삼는 전형적 내수산업인 것은 어느 나라나 마찬가지다. 하지만 그런 기본적 속성과 농업을 수출 산업화하려는 노력은 전혀 다른 문제다. 급속한 산업화 과정에서 크게 줄어들었지만 국내에는 여전히 123만 가구의 농가가 있고 전체 인구 중 농가 인구 비중은 6.8%로 미국·프랑스·일본(2~3%)에 비해 두 배 이상 높다. 최근 10년간만 해도 한 해 3% 남짓씩 농업 인구가 줄어드는 추세와 농촌 고령화가 도시보다 훨씬 심각한 점 등을 감안하면 어차피 우리 농업은 현재 전체 농가의 20%에도 못 미치는 전문 농가를 집중 육성하는 길로 가는 수밖에 없다. 그 길이 기업 자본의 참여를 보다 폭넓게 허용하는 것이든, 농협이 돈놀이보다 생산자조합으로서의 본 모습을 찾아가는 방향이든 ‘기업적 모습’을 갖춰 나갈 필요가 있다.

게다가 우리는 일본은 물론 소득 수준이 급속히 높아지는 중국이란 거대한 소비시장을 양 옆에 갖고 있다. 이런 지리적 조건은 기업(형) 영농의 안정적 수요 기반을 확보하는 데 엄청난 이점이다. 규격화, 다양화, 안정적 물량 공급, 안전성 확보에 대한 노력만 더해진다면 농업은 분명 또 하나의 블루오션이 될 수 있다.

박태욱 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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