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사고는 남의일'부끄러운 관광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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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비행기 사고가 나서 난린데 쇼핑이나 하고 다닌다고 교민들의 시선이 곱지않은 것 같아. " "희생자들도 어차피 놀러왔다 죽은건데 뭘, 신경쓰지 말고 남은 휴가나 화끈하게 보내자구. " 괌의 한 호텔 엘리베이터를 함께 탄 두쌍의 30대 한국인 관광객 부부가 쇼핑백을 한아름 안고 나눈 대화다.

이국땅에서 들린 우리 말에 이토록 소름돋는 느낌을 받기는 처음이었다.

사고이후 희생자 유가족을 지원하는 괌 교민사회의 노력은 헌신적이다 못해 사뭇 숙연하기까지 했다.

자신들의 생업도 있고 교민 가운데도 희생자가 있었지만 비보를 듣고 경황없이 고국에서 달려온 유가족들이 무엇보다 우선이었다.

하지만 괌에 휴가를 즐기러 온 한국인 관광객들에게 이번 참사는 분명 '남의 일' 이었다.

참으로 대조적인 일이었다.

현지에서 만난 한 한국인 택시운전기사는

" '재수없으니 사고현장을 멀리 돌아가자' 고 요구하는 관광객까지 있었다" 며 어이없어 했다.

참사현장에서 태연히 기념촬영을 하고나서 유가족들 앞에서 자기 당 대선후보 선전이나 늘어놓던 집권여당의 국회의원들 역시 이러한 관광객들과 다름없었다.

물론 모처럼 얻은 휴가를 봉사활동으로 보내라고까지 기대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대부분 건물에 조기가 걸려있는 상황에서 쇼핑센터와 유흥업소를 가득 메우고 있는 한국인 관광객들의 모습은 아무래도 지나친게 아닐까. 조금이나마 도울 것을 찾아 자신의 휴가도 제쳐두고 멀리 미국본토에서 날아온 외국인 자원봉사자들의 눈에 이들이 과연 어떻게 비칠지 낯뜨겁다는 느낌이다.

괌을 찾는 우리나라 관광객들의 흥청거림을 지켜보면서 시신 발굴및 확인 작업이 지연되고 있는데 대해 우리가 미국측의 방만한 태도를 과연 비난할 자격이 있는지 새삼 의문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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