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호세상보기] 의심과 믿음의 세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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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모든 것을 믿는 것은 잘못이지만 아무 것도 믿지 않는 것 역시 잘못이다.

요즘 한국 사회에서 교차 (交叉) 되는 믿음과 의심의 문제는 무엇인가.

군 입대를 피하기 위한 대선후보 자제의 고의적 체중감량에 관한 의혹은 문제가 제기될 때부터 그 성격이 명백했다.

첫째,징집대상에서 빠지기 위해 고의적으로 몸무게를 줄였다.

둘째, 실제로는 체중미달이 아니었는데 신체검사 과정에서 미달로 조작됐다.

셋째, 정말로 몸무게가 그렇게 줄었었다.

의혹을 제기하는 측에선 첫째와 둘째 경우를 주장하고, 의혹을 받는 측에선 셋째 경우의 결백을 주장한다.

문제는 의혹을 제기하는 측에서 증거를 제시하지 못하면서도 상대방의 결백을 믿지 않는다는 것이다.

의학적 불가능론이 제시됐으나 사람의 몸이라는 것은 어떤 경우에는 그야말로 피골이 상접한 지경에까지 이를 수 있는 것 아닌가.

따라서 상대당 대선후보의 위선 (?

) 이 밉다면 고의론과 조작론을 입증할만한 증거를 대든가, 그렇지 못하면 열린 마음으로 상대방의 해명을 수용해야 한다.

□ 사실상 부도를 낸 기아 (起亞) 의 회생대책을 둘러싸고 회사측과 채권단.정부가 서로를 못미더워하고 있다.

10대 재벌 순위에 드는 이 기업의 회생은 시장원리에 의한 해법이 순리라는데 왜 일이 제대로 안풀리는지 보는 사람들은 답답하다.

거대한 빚더미 위에 올라앉은 이 기업은 채권단이 요구하는 회생대책이 무슨 시나리오에 따라 움직이는 것이라고 반발한다.

그런 허구에 포로가 돼 기사회생의 기회를 놓치면 안된다.

정부는 일단 채무자와 채권자의 양자 해결을 지지하고 채권단은 보다 강도높은 자구노력을 요구하고 있는 것같다.

부도를 낸 회사는 일이 이 지경에까지 이른 과정을 무시하고, 과거의 발전방식에 집착하고, 도와주려는 금융권을 의심한다.

의심은 해결책이 아니다.

□ 김영삼 (金泳三) 정부의 마지막 개각은 대선관리를 공정하게 하기 위해 신한국당 당적을 가진 각료 8명을 선거를 앞두고 교체해야 한다는 명분이 있었다.

그러나 막상 뚜껑을 열고보니 바뀐 장관이 11명이나 됐다.

내무.법무.교육.노동장관은 별 이유도 없이 바뀌었다고 수군대고 있다.

대통령은 장관을 너무 못 미더워하는 것은 아닐까. 金정부의 장관 목숨은 그야말로 파리 목숨, 장관을 이렇게 자주 가는 것이 불신의 표시가 아니라면 반대로 자신이 선택한 인사는 누구라도 일을 잘할 수 있다는 자신감의 표시일 것이다.

그러나 어떤 경우라도 국정을 너무 쉽게 생각한 까닭은 빼놓을 수 없다.

'봐주기식 등용' '마지막 선심' 이라기보다 국정을 쉽게 생각하는 자신감이 더욱 보는 이를 아슬아슬하게 한다.

□ 불신과 신뢰의 교차는 44년만에 대좌한 한국.북한.미국.중국의 4자회담에서도 표출됐다.

"이번 예비회담에서는 본회담의 의제로 한반도의 평화체제 구축과 긴장완화및 신뢰구축 조치로 선정하는데 합의합시다.

" "그것을 포괄적으로 다루는데 우리는 찬성이오. " "우리는 반대요. " "북.미 평화협정으로 구체화합시다.

" "우리는 반대요. " "그것은 의제에서 뺍시다.

" "빼는데 찬성이오. " "넣는데 찬성이오. " "당신은 무엇을 반대하고 무엇을 찬성했소. " "아무것도 믿지 않는 것에 찬성했고 아무 것도 믿지 않는 것은 잘못이라는데 반대했소. " "?"

<김성호 수석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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