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첫걸음 뗀 4자회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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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뉴욕에서 열렸던 4자회담 1차 예비회담이 본회담개최에 관한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끝났다.

최대쟁점인 의제 문제로 처음부터 남북한이 이견 (異見) 을 드러낸 탓이다.

본회담의 방식과 일시.장소등 절차문제에서는 어렵지 않게 합의했지만 의제 문제에서 우리가 한반도 긴장완화와 남북한의 신뢰구축을 거론한데 대해 북한측은 북.미 (北.美) 평화협정체결과 주한미군 지위문제를 다뤄야 한다고 고집한 것이다.

최종 결론을 내리지는 못했지만 이번 예비회담을 실망적이라고 성급하게 판단할 일은 아니다.

북한이 의제 문제로 버티기는 했지만 이는 예상됐던 일이다.

북한을 상대로 한 협상이 수월하지 않을 것은 우리도 이미 각오했던 것이고 예비회담 접촉을 통해 북한의 의도를 파악할 수 있었던 것만으로도 이번 회담은 의미가 있다.

고무적인 것은 4자회담에 대해 북한이 전혀 부정적이지만은 않다는 점이다.

부분적인 합의이긴 하지만 절차문제에 쉽사리 의견을 모으고 예비회담을 9월 중순에 속개하기로 한 것 등은 북한이 4자회담의 효용을 인정하고 있는 증거다.

북한이 4자회담에 응하게 된데는 물론 나름대로의 속셈이 있다.

뉴욕의 예비회담에서 1백50만의 식량이 부족하다며 본회담에 앞선 식량지원을 요구한데서 드러났듯 북한은 경제난에서 벗어나는 탈출구로 4자회담을 활용하겠다는 의도를 갖고 있다.

북한의 이러한 사정을 우리는 속속들이 알고 있어 협상전략과 전술면에서 크게 그르칠 염려는 없다.

문제는 북한이 경제적 실리를 챙기면서 미국과 평화협정을 체결하겠다는 고집스러운 시대착오적 태도다.

북한의 정치적 속셈은 클린턴 미행정부의 대북 (對北) 유화책 (宥和策) 을 이용해 한국을 따돌리겠다는 것이다.

주한미군의 지위문제를 거론하는 것도 같은 배경이다.

앞으로 4자회담의 예비.본회담 과정은 북한으로 하여금 남한을 외면하려는 이런 정치적 의도가 망상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깨우쳐주는 계기가 되도록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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