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칼럼]생존자 집계도 못내는 정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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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대한항공 여객기가 괌도 (島)에 추락한 6일 정부와 대한항공 사고대책본부의 생존자 집계는 하루종일 오락가락했다.

대책본부가 이날 하룻동안 발표한 생존자는 29 - 49 - 55 - 61 - 33 - 30 - 29명으로 시간대마다 숫자가 달라졌다.

혼선은 오후1시30분쯤 절정을 이루었다.

외무부 대책반장인 홍정표 (洪正杓) 2차관보가 "오전에 발표한 생존자 55명은 착오였다" 며 "괌 현지의 확인결과 생존자는 30명" 이라고 '확정발표' 하는 순간 대한항공은 61명, 건교부는 32명이라고 자체발표를 수정하고 있었다.

정부는 이같은 혼선이 '시시각각 달라지는 사망자 수 때문' 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괌 당국과 미군이 이날 정오부터 구조작업을 중단했고, 이후 사망자수에 별다른 변화가 없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정부설명이 설득력을 갖기는 어렵다.

이런 혼선의 진짜 이유는 무엇일까. 정부내 조정기능이 전혀 작동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한결같은 지적이다.

외무부는 괌 총영사관에 설치된 현장 사고대책반의 보고사항을 그대로 발표했고, 건교부는 괌에 급파한 의료진의 현장보고를 여과없이 발표한 것으로 전해진다.

대한항공도 마찬가지였다.

하루종일 헷갈린 것은 생존자수만이 아니었다.

부상자 한국후송을 위해 주일 미군수송기 (C - 9) 를 파견하는 문제에서도 혼선이 거듭됐다.

총리실과 건교부는 이날 "C - 9기가 6일 밤 출발할 것이며, 7일 오전에는 부상자 18명이 서울에 도착한다" 고 확인했다.

그러나 국방부.외무부는 "출동대기중인 것은 사실이나 출발시기와 환자수는 결정되지 않았다" 고 했다.

더욱 딱한 것은 정부가 무엇인가 움직이는 모습을 보여주자는게 혼선의 배경이었다는 점이다.

탑승자 가족.시민들로부터도 "무슨 짓거리냐" 는 비난이 쏟아지자 이기주 (李祺周) 외무부차관은 이날 밤 중앙사고대책본부장인 이환균 (李桓均) 건교부장관과 전화접촉을 시도했지만 통화조차 이뤄지지 않았다.

李장관의 '개인적 약속' 때문이라고 했다.

비통한 심정으로 혼란을 지켜보는 희생자 가족과 국민의 안타까움은 그렇다 치자. 생존자 명단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면서 중앙사고대책본부는 왜 만들었는지 모를 일이다.

이 정도 사고에 갈팡질팡하는 정부가 전쟁이 나면 어떻게 대처할지, 생각만 해도 섬뜩하다.

<최상연 정치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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