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왕릉 도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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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세계에서 유적지의 무차별 도굴 (盜掘) 로 가장 골치를 썩이는 나라는 동.서양의 오랜 역사를 대표하는 중국과 이스라엘이다.

마음만 먹으면 곡괭이와 삽 따위로 어디를 파헤치든 돈 되는 물건들을 챙길 수 있기 때문이다.

'도굴꾼의 천국' 으로 불리기도 하는 이들 두 나라의 이런저런 골동품들이 해외시장에서 인기품목으로 등장한지도 오래다.

미국이나 유럽의 돈 많은 나라에서 가장 대중화돼 있는 골동품이 중국의 토용 (土俑) 등 인물상과 이스라엘의 은화 (銀貨) 등 옛날 화폐들이다.

고분 (古墳) 하나에 수천개씩 들어있다는 중국의 인물상은 국내에서 중간상인에게 개당 5백달러 정도로 넘겨지지만 해외시장에 나가면 3천달러를 호가한다.

구릉 (丘陵) 지역에 널려 있는 2~3세기께 이스라엘의 은화 역시 국내에서는 2천달러 정도로 거래되지만 일단 해외로 반출되면 최소한 5배는 받을 수 있다고 한다.

당연히 이들 두 나라의 도굴에는 해외 도굴꾼의 개입 내지 사주 (使嗾)가 작용한다.

도굴은 그 자체가 '역사의 약탈' 이므로 국내 도굴꾼이 단순한 소유나 완상 (玩賞) 만을 목적으로 고분을 파헤치는 예는 드물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본격적 도굴' 의 역사는 일제 (日帝) 강점 초기부터로 본다.

1910년을 전후해 개성과 강화도의 고려고분 도굴로부터 시작된 일본인들의 도굴행각은 몇년후 낙동강 하류와 경주지역에 무수히 널려 있는 가야및 신라고분 도굴에 이르러 절정으로 치달았다.

수많은 조선인들이 하수인으로 참여했음은 물론이다.

특히 어느 나라건 고분의 부장품 (副葬品) 은 묻힌 이의 신분에 따라 값어치가 결정된다는 점에 착안, 수많은 왕릉이 파헤쳐져 값진 매장문화재들이 이때 일본에 흘러들어갔다.

오죽하면 당시 경성제대 일본인교수조차 보고서에서 "…도굴로 인한 황폐의 참상은 차마 볼 수 없을 정도…이는 현대인의 죄악이며, 땅에 떨어진 도의를 보려거든 이 고분군집지를 가 보라" 했을까. 이번 경주의 신라 진덕여왕릉 도굴사건도 부장품 도난여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지만 그 저의와 목적이 국내 수요보다는 해외반출을 염두에 둔 것임이 분명해 보인다.

'열 사람이 도둑 하나를 막지 못한다' 지만 관리당국은 '매국노' 와 다를바 없는 이들의 횡행을 어쩌려는지 답답하기 짝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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