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당보다 ‘대접’받는 일본 민주당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2면

일본의 제1야당인 민주당이 ‘여당 대접’을 톡톡히 받고 있다. 정부 고위 관료들은 민주당에 줄 대기를 시작했다. 미국 정부도 일본 민주당에 구애작전을 펼치고 있다.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 측은 방일 중 상견례를 먼저 제안해 간신히 일정을 잡았다.

민주당에 대한 예우가 전과 달라진 것은 갈수록 커지는 정권 교체 가능성 때문이다. 각종 여론조사에서는 민주당이 ‘앞으로 정권을 담당할 수 있는 정당’이라는 평가까지 나오고 있다. 교도(共同)통신이 9일 발표한 여론조사에서는 전체 응답자의 55.3%가 민주당이 집권하기를 바란다고 답했다. 특히 15일 니혼(日本)TV가 발표한 아소 내각 지지율은 9%대를 기록해 정권 유지가 불가능한 수준으로 내려왔다.

◆민주당 눈치 보는 관료 집단=관료 집단에는 비상이 걸렸다. 민주당이 정권 교체의 대표 공약으로 ‘관료 개혁’을 내세우며 관료의 인사·업무 관행 등 관료 사회를 근본적으로 개조하겠다고 선언했기 때문이다. 관료들은 그동안 “야당이 정치적 슬로건으로 내세우는 소리”라며 민주당의 공약을 한 귀로 흘렸다.

그러나 민주당이 지지율을 기반으로 목소리를 높이자 관료들의 태도가 달라지고 있다. 이런 분위기는 지난해 말 민주당이 개최한 연금 정책 심의 회의에 소관 부처인 후생노동성의 간부가 불참한 것을 계기로 표면화했다.

당시 민주당 의원들은 “관료들이 (민주당을 계속 무시하면서) 책임 있게 정책 설명을 하지 않으면 정부 법안을 심의하지 않겠다”며 경고성 메시지를 보냈다. 이 소식이 전해지자 후생노동성은 관방장을 황급히 민주당으로 보내 사죄하고 적극적으로 협력할 것을 다짐했다.

다른 부처들도 민주당에 대한 로비와 설명을 강화하고 있다. 주요 부처들은 민주당에 법안 설명 등을 할 때 파견하는 관료의 격을 과장급에서 심의관·국장으로 올렸다. 민주당은 집권하면 국회의원이 겸직하는 정부 부처의 부대신·정무관 수를 현재의 두 배인 100명 수준으로 늘릴 계획이다. 이렇게 되면 상당수의 직업 관료는 옷을 벗을 각오를 해야 한다. 외무성 관료들도 인맥 만들기를 위해 지난달 하순 민주당 의원들에게 접근해 ‘저녁을 겸한 의견 교환회’를 했다.

◆미국도 일본 정국 예의 주시=16일 일본을 방문한 힐러리 미 국무장관은 민주당 지도부와 상견례 일정을 중시하고 있다. 미국 측이 먼저 제안해 17일 오후 9시에 열리는 이번 회담은 의제와 시간 제한이 없다. 민주당은 처음에는 지방 유세를 이유로 힐러리의 제안을 한 차례 퇴짜 놓았다. 그런데도 힐러리 측이 재차 제안해 옴에 따라 회동이 이뤄지게 됐다.

미국이 이렇게 고개를 숙여 가며 민주당과 앞면을 트려는 것은 민주당이 집권하면 미국에 상당히 까다로운 상대가 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오자와 이치로(小澤一郞) 민주당 대표는 “(자민당과 달리) 민주당은 미국이 하자는 대로 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특히 미 해병대의 오키나와(沖縄) 후텐마(普天間) 비행장 이동은 물론 주일 미군 지위협정도 크게 개정해야 한다는 게 오자와의 지론이다. 요미우리(讀賣)신문은 “정권이 바뀌면 미·일 양국 정부 간 마찰 가능성이 매우 커진다”고 밝혔다. 일본 외무성 관계자는 “미국은 민주당이 집권하게 되면 누가 외무상과 방위상을 맡을지에도 깊은 관심을 나타내고 있다”고 말했다.

도쿄=김동호 특파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