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권무림]만인전시기 무공 試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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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만인전시기 (萬人電視機)가 무림지존을 만든다.

' 대중검자는 더 젊어보여야 했고 종필노사는 보다 단호해져야 했다.

회창객은 여유있는 웃음을 보여줘야 했다.

바로 상대가 만인전시기였기 때문이다.

수백만 백성을 여의섬에 동원해놓고 황금을 마구 뿌려대며 갖은 무공, 없는 실력을 과시해야 했던 시대는 이제 지났다.

안방에서 강호백성의 눈앞에 얼굴을 맞대고 지닌 바 무공을 펼쳐 보이는 세상이 온 것이다.

강호백성 천만명이 만인전시기 앞에 모여들었다.

그러나 기대를 모았던 만인전시기에서의 첫 무공시연 (試演) 은 실패작으로 끝났다.

누구의 무공이 강한가를 비교하려던 본래 의도는 실종됐다.

백성들은 만인전시기를 돌렸다.

같은 시각, 다른 화면에서 보여주는 서양광대들의 활극이 더 재미있었기 때문이다.

누가 어떤 무공에 뛰어나고 어떤 초식에 약점이 있는가를 캐내라고 선정했던 강호백성 대리인들의 공격이 세 절대자에게 아부라도 하듯 너무 밋밋했던 게 첫번째 이유였다.

절대고수의 약점을 드러내려면 치밀한 공격을 가해야 했는데도 그것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예를 들어 외교공 수준을 파악하려면 백성대리인들이 최고의 외교공으로 공격해야 상대가 얼마나 능수능란하게 외교공을 구사할 수 있는지 알 수 있었다.

그러나 대리인들이 펼친 무공은 기껏해야 왕초보외교공 정도였고 이래서야 여야대표들간 무공 실력의 차이를 드러내긴 애초에 불가능했다.

회창객은 두 아들에 대한 재야무림의 공세를 막는 데 열중했고 종필노사.대중검자 모두 지닌 바 약점을 감추고 상대의 약점을 드러내는 데만 힘을 쏟았다.

결국 만인전시기를 통한 무공시연은 강호백성이 진정 믿고 따를 무공과 실력을 가진 자가 누구인지 선택하는 데 아무 도움도 주지 못했다.

첫 무공시연이 별무소득으로 끝나자 여야무림 출전자들을 한자리에 모아놓고 서로간 무공을 비교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종필노사가 먼저 삼인합동 비무를 주장했다.

"세사람이 한자리에 모이자. 모여서 논무 (論武 : 말로 무공을 겨루는 것) 를 열자. 그래야 강호백성이 누가 최강의 무공과 실력을 가졌는지 알 게 아닌가.

" 회창객이 반발했다.

"재야무림엔 출전자가 두명이다.

일대이로 싸우는 건 누가봐도 불공평하다.

일대일의 논무라면 언제든지 받아주겠다.

" 대중검자는 뜸을 들였다.

"무림법에 합동논무는 금지돼 있다.

무림법을 바꾸고 두달쯤 뒤부터 합동논무를 열자. " 회창객은 일대이의 싸움이 싫고 대중검자는 지존비무 직전 합동논무를 통해 회창객에게 방비할 시간을 주지않고 치명적 공격을 해야 했다.

종필노사는 두사람의 싸움을 적당히 부추기기만 하면 될 터였다.

삼인삼몽 (三人三夢) .결국 만인전시기를 통한 합동논무는 무력 97년 지존비무 기간에도 이루어지지 않기 십상이다.

뒤늦게 회창객이 "백성의 뜻이라면 일대이의 합동논무도 사양않겠다" 고 밝힌 것은 행여 자신이 이를 기피한다는 인상을 주기 싫다는 뜻. 그러나 무림법을 바꾸고 논무 규칙을 새로 만들기엔 시간이 너무 없었다.

세 고수간 요 핑게 저 핑게로 합동논무가 끝내 무산되면 강호백성들은 고개를 갸우뚱하며 한마디씩 하게 되리라. '만인전시기가 무림지존을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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