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열되는 여야 폭로전 … 실태와 문제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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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여야가 정책대결이라는 본연의 임무를 망각한채 무차별적 흠집내기.폭로전으로 치닫고 있다.

그저 어떡하면 상대 후보에게 흠집을 낼까 하는데 집중하는 느낌이다.

그러다보니 사실로 입증되지 않은 것도 마치 사실인양 포장돼 국민들을 오도하는 상황까지 펼쳐진다.

이에 질세라 상대방도 설익은, 때로는 이미 근거없는 사실로 확인된 내용까지 재포장해 공격자료로 쓰면서 감정대립을 증폭시키기도 한다.

물론 국가지도자를 뽑는 과정에서의 검증은 강조돼야 한다.

유권자의 선택을 위한 당연한 과정이다.

하지만 검증보다는 인신공격에 초점이 맞춰지면서 정치는 혼탁해지게 마련이다.

때문에 최근의 경제난등 민생문제에 대한 여야의 관심은 찾아볼 길 없고 그래서 국민들의 걱정은 늘어간다.

국민회의와 자민련은 이회창 (李會昌) 신한국당 대통령후보를 깎아내리는데 몰두하는 인상이다.

이에 신한국당은 김대중 (金大中) 국민회의.김종필 (金鍾泌) 자민련 대통령후보의 진실 여부가 확인안되는 과거지사를 모두 끌어 모아 터뜨리고 있다.

야당은 李대표 두 아들의 병역면제와 관련, 최근에는 "당시 군의관의 신병을 확보했으며 곧 양심선언이 있을 것" 이라는 소문을 퍼뜨리고 있다.

일종의 심리전을 전개해 국민의 관심을 끌려고 노력하면서 이 문제를 "단순한 체중감량이 아니라 직위를 이용한 압력" 으로 단정하고 몰고가는 듯한 인상이다.

국민들이 실제여부를 떠나 지니는 의구심을 십분 활용하는 중이다.

국민회의 정동영 (鄭東泳) 대변인은 "폐기됐다던 병적기록표가 부활된 것은 李대표 아들들의 체중의혹을 진화하기 위해 급조했거나, 국방부가 체중감량 의혹을 은폐하기 위해 국회에 병적기록표가 폐기됐다고 보고했든지 둘중 하나다" 라며 李대표 아들문제에 정부까지 가담했다는 주장도 제기했다.

이뿐 아니다.

야당은 "신한국당 李대표에 대한 제2탄, 3탄 폭로도 있을 것" 이라고 공공연히 예고하고 있다.

이규양 (李圭陽) 자민련 부대변인은 지난달 19일 "李후보는 변호사시절인 95년 3월 한국중공업 사옥반환사건을 맡아 1억5천만원의 수임료를 받았고, 부산대 일조권 침해사건등 굵직한 사건을 많이 맡았으나 납세실적은 거의 없다" 고 주장했다.

그 근거는 밝히지 않았다.

그러자 국민회의 鄭대변인은 지난달 29일 "李대표는 감사원장 재직때인 93년 10월 청와대의 압력을 받고 경부고속철도 특감을 중단했다" 고 주장했고, 윤호중 (尹昊重) 부대변인은 31일 "李대표의 경선자금은 11억9천1백만원+α" 라고 말했다. 물론 그 물증제시는 없었다.

여당도 당하고만 있지 않았다.

홍준표 (洪準杓) 의원과 이윤성 (李允盛) 대변인은 지난달 23, 24일 각각 "김대중 국민회의총재가 92년 대선때 법정선거비용의 5배가 넘는 1천억원 이상을 썼다" "김종필 자민련총재는 93년 동화은행 비자금 수사때 89억원의 가.차명계좌를 갖고 있었던 사실이 적발됐으나 수사는 이뤄지지 않았다" 고 잇따라 주장했다.

이들 역시 아무런 물증도 내놓지 않았다.

李대표 아들문제에 대한 국민회의의 공세가 강화되자 신한국당 김충근 (金忠根) 부대변인은 지난달 29일 "金총재가 6.25때 용공부역을 했으면서도 반공전투에 참여한양 군경력을 허위날조했다" 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것은 신뢰성을 확보할 수 없는 미국의 한 교포 주간지의 95년 8월 보도내용을 인용한 것이었다.

같은날 허대범 (許大梵) 의원도 이 주간지에 들어 있는 내용을 국회 대정부질문을 통해 밝히면서 '무조건 의혹이 있다' 는 식으로 말했다.

신한국당의 한 당직자는 "상대방이 죽기 살기식으로 헐뜯는데 정책은 무슨 정책이냐. 고위당직자회의에서조차 '야당의 공세에 효과적으로 대처하지 못한다' 는 얘기가 나올 판이니 정책개발을 위해 머리쓸 여유가 있겠느냐" 고 말했다.

국민회의의 한 의원도 "이 판에 정책얘기를 하면 상대방에게 밀린다는 인상을 줄 뿐" 이라고 토로했다.

김석준 (金錫俊) 이화여대 교수 (정치행정학) 는 "여야 대선후보는 공인중의 공인인만큼 개인적 문제라도 검증은 필요하지만 흠잡는 것으로 선거를 이길 수 있다는 생각은 금물" 이라며 "여야 후보들은 국가경영능력과 비전, 상충되는 정책들을 내놓고 토론하고 경쟁해야 한다" 고 촉구했다.

이상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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