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ve Earth Save Us] 유럽 “전기 흡혈귀와 전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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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전기 흡혈귀를 잡아라’. 유럽연합(EU)이 가전제품에서 전기를 조금씩 훔쳐 가는 ‘대기전력’과의 전쟁에 나섰다. 대기전력이란 가전 제품의 전원을 끄고 플러그를 꽂아 놓은 상태에서 소모되는 에너지다. 소리 없이 전기를 빨아먹는다고 해서 ‘전기 흡혈귀’로 불린다.

EU는 지난해 12월 자체 보고서에서 지난 10년 동안 EU 국가들의 대기전력 소모량이 30% 늘었다고 밝혔다. 지금 추세라면 유럽 가정에서 소모되는 대기전력량은 2020년에 47TW(테라와트=1조W)를 넘어설 것이라고 경고했다. 2005년보다 2TW나 늘어나는 것이다.

프랑스 경제지 라 트리뷴은 11일 “EU가 대기전력을 줄이기 위한 대책 마련에 나섰다”고 보도했다. 에너지 절약이 ‘제5의 에너지’라는 최근 추세에 맞춰 본격적으로 ‘대기전력과의 전쟁’에 나선 것이다.

EU는 첫 단계로 주요 가전제품의 대기전력 소모를 내년부터 1W 미만으로 줄이기로 했다. 현재 유럽에서 판매되는 TV의 대기전력은 일부를 제외하고는 1∼3W 수준이다. 또 가전제품에 부착된 전원 버튼만 켜고 리모컨 전원은 켜지 않은 스탠바이 모드(ON-OFF의 중간단계)에서는 2W 미만으로 규제하기로 했다. 2013년부터는 대기전력 소모를 0.5W로 줄이는 등 2010년의 절반으로 줄이도록 규제를 강화할 방침이다. 규제 대상 품목에는 TV·오디오·전자레인지·헤어드라이어 등이 포함될 전망이다.

EU는 이렇게 하면 2020년까지 대기전력 소모를 35TW나 줄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는 덴마크가 한 해 동안 쓰는 전력량이다.

◆한국은 ‘모범국’=한국은 대기전력 줄이기에 관한 한 세계에서 가장 앞선 나라에 속한다. 정부는 2004년 국제에너지기구(IEA)의 권고를 받아들여 ‘스탠바이(Standby) 코리아 2010’ 로드맵을 발표했다. 국내에서 유통되는 모든 전자제품의 대기전력을 2010년까지 1W 이하로 낮춘다는 내용이다. 미국·호주에 이어 세 번째다.

지난해 8월에는 세계 최초로 TV에 ‘대기전력 경고표시제’를 도입했다. “이 제품은 에너지 이용 합리화법에 따른 대기전력 기준을 만족하지 못합니다”고 표시한다. 올 7월부터는 컴퓨터·모니터·프린터·전자레인지에도 경고표시제가 적용되고 내년부터 전체 제품으로 확대된다.

에너지관리공단 효율표준실 김영래 팀장은 “디지털 방송 수신에 쓰이는 셋톱 박스는 대기전력이 20~40W에 달해 1W로 줄일 수는 없고 대신 7월부터 10~20W로 줄이도록 했다”고 말했다.

삼성전자 프랑스 법인은 12일 발광다이오드(LED) TV 출시 행사를 열었다. 이 제품의 대기전력은 0.08W 수준으로 기존 TV보다 매우 뛰어난 친환경 제품이다. LG전자도 친환경 모델 도입을 앞당길 방침이다.

파리=전진배 특파원, 서울=강찬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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