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권력 보는 부정적 시각 8년 전보다 15%P 높아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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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2000년 이후 폭력에 대한 한국인의 인식은 어떻게 변했을까.

“법보다 주먹이 먼저”라는 생각이 고정관념으로 일부에선 자리 잡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공권력을 폭력으로 간주하고 거부 반응을 보이는 경향도 강해졌다.

한국형사정책연구원(이하 형정원)이 12일 발표한 ‘폭력 문화의 구조화에 관한 연구’라는 보고서 내용이다. 형정원은 “공권력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사회적 갈등의 원인이 될 수 있다”는 분석을 내놓았다. 최근 발생한 용산 재개발 농성자 사망 사건에서도 공권력과 폭력에 대한 국민들의 상반된 시각이 드러났다. 폭력을 용인하는 문화는 사회 갈등을 제도적으로 해결하기 힘들게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견해다.

형정원은 전국 7대 광역시의 주민과 전문가 등 1505명을 설문조사했다. 그 결과 국민 10명 중 3명이 ‘법보다 주먹이 먼저’라는 인식을 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책임자인 연성진 선임연구위원은 “상당수의 국민이 폭력의 필요성 등을 인정하고 있었다”고 우려했다.


◆8년 전보다 공권력 인정하지 않아=이번 조사에서 ‘범인의 검거를 위해 경찰이 위협 사격을 하다 범인에게 상해를 입혔다’는 질문에 대해 53%가 “그럴 수 있다”고 답변했다. 하지만 47%는 ‘그래서는 안 된다’는 의견이었다.

형정원은 2000년에도 같은 조사를 했다. 당시 응답자의 68%가 “그럴 수 있다”고 답했다. 공권력 남용(범인에게 상해를 입힌 점)에 대한 허용도가 과거 조사보다 15%포인트 낮아진 것이다. 연 연구위원은 “지난 8년간 상대적으로 공권력을 용인하지 않는 쪽으로 인식이 변화한 것”이라고 말했다.

‘말이나 법으로 해결되지 않는 일이 폭력으로 해결되는 경우가 많다’는 질문에 ‘그렇다’는 취지의 답이 37.5%(565명)였다. ‘사소한 일에 법적인 해결보다 폭력이 효과적’이라는 데 동의하는 사람도 32.6%였다. 이 같은 생각을 하는 국민들은 8년 전 조사에서도 30~40%에 달했다. 연 연구위원은 “10명 중 3명 이상이 폭력이 효과적이라고 보는 상황에서, 공권력을 더욱 인정하지 않게 된다면 사회적 갈등을 제도적으로 해결하기는 더욱 어려워질 것”이라고 말했다. 용산 사건도 공권력을 무시하고 폭력에는 둔감해진 문화가 반영된 결과라는 것이 형정원의 분석이다.

◆폭력 가정에서 폭력 재생산=가정 내 폭력은 폭력을 재생산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부모 간의 구타를 수차례 경험한 사람 중 41.9%가 자신의 배우자를 때린 것으로 조사된 것이다. 부모 구타를 경험하지 않은 사람은 10%만이 배우자를 폭행했다. “자식을 구타하는 것이 어느 정도 필요하다”고 보는 응답자는 33%였다. 연구팀은 각종 폭력에 대한 허용도도 조사했다. 폭력 유형을 제시하고 이를 용인하는지를 물었다. 가장 허용도가 높은 폭력은 ‘정당방위’였다. ‘가정집에 침입해 부녀자를 폭행하는 강도를 가족이 흉기로 찌른 폭력’에 대해 60%가 ‘그럴 수 있다’고 답했다. 그 다음으로 허용도가 높은 폭력은 ▶범죄에 대한 과잉 방어 ▶공권력 남용 ▶부부 간 폭력 등의 순서였다.

박유미·최선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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