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성호 기자의 현문우답 <56> 공자의 유언…침묵으로 말한 7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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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사람들은 왈가왈부합니다. 누구는 “공자가 유언을 남겼다”고 하고, 또 누구는 “공자는 아무런 말도 남기지 않았다”고 하죠. 2500년 전, 공자(기원전 551~479년)는 과연 유언을 남겼을까요? 남겼다면 어떤 의미가 담겼을까요?

#풍경1 : 공자는 제자인 자공을 무척 아꼈습니다. 자공이 위나라에 사신으로 가 있을 때였죠. 스승의 안부가 들려왔습니다. “요즘 이상한 노래를 지어서 부르신다”는 거였죠. 자공은 그 노래의 가사를 물었습니다. “태산기퇴호(泰山其頹乎), 양목기괴호(梁木其壞乎), 철인기위호(哲人其萎乎)”. 그건 “태산이 무너지는구나 / 대들보가 쓰러지는구나/ 철인이 시드는구나”란 뜻이었죠. 일을 마친 자공은 여장도 풀지 않고 스승이 있는 곳으로 달려갔습니다.

#풍경2 : 공자의 노래가 의미심장하죠. 그걸 들으니 ‘무언(無言)의 대설법’으로 유명한 중국의 약산(745~828) 선사가 생각나네요. 법당에서 좌선을 하던 약산 선사는 갑자기 “법당이 무너진다~아!”라고 고함을 질렀죠. 제자들은 난리가 났죠. 법당 안을 여기저기 뛰어다니며 기둥과 대들보를 살폈습니다. 그걸 보던 약산 선사는 “우하하!”하고 호탕하게 웃었습니다. 그리고 숨을 거두었죠. 법당이 무너진다, 그건 약산 선사의 유언이었습니다.

#풍경3 : 다시 공자 얘기를 할까요. 허겁지겁 달려온 자공은 공자의 집 앞에 도착했죠. 쇠약한 모습의 공자는 대문 밖에 서 있었습니다. “스승님, 이제 막 위나라에서 돌아왔습니다.” “사(賜·자공의 이름)야, 네가 왜 이렇게 늦었느냐. 이리 가까이 오너라.” 그리고 공자는 지난 밤 꿈 이야기를 했죠. “하(夏)나라 사람들은 동쪽 계단 위에 빈소를 차리고, 은(慇)나라 사람들은 두 기둥 사이에 빈소를 차리고, 주(周)나라 사람들은 서쪽 계단 위에 빈소를 차렸다. 내 시조(始祖)는 은나라가 아니더냐. 어젯밤 꿈에 두 기둥 사이에 편안히 앉아 있는 꿈을 꾸었다.” 공자는 자신의 죽음을 예감한 겁니다.

집으로 들어간 공자는 말했죠. “나는 이제 아무 말도 하지 않으련다.” 뜻밖의 말을 듣고 자공이 물었습니다. “스승님께서 아무 말씀도 안 하시면 저희가 어떻게 도를 이어받아 전하겠습니까?” 그러자 공자가 답했죠. “하늘이 무슨 말을 하던가? 사시가 운행되고 만물이 생장하지만, 하늘이 무슨 말을 하던가?” 공자는 말문을 닫았습니다. 병세는 점점 나빠졌죠. 침대에 누운 공자는 아무런 말이 없었습니다. 그렇게 7일이 흘렀죠. 그리고 공자는 숨을 거두었습니다.

이 때문에 사람들은 왈가왈부합니다. “유언을 남겼다” “아니다”라고 말이죠. 여러분 생각은 어떻습니까. ‘공자의 유언’은 있을까요, 없을까요? 맞습니다. 공자는 ‘분명히’ 유언을 남겼습니다. 끝도 없이 크고, 밑도 없이 깊은 유언을 남겼죠. 그게 뭐냐고요? 공자의 ‘침묵’입니다. 그럼 묻겠죠. “침묵이 유언이냐?”고 말이죠. 아닙니다. 침묵은 유언이 아닙니다. 유언은 바로 ‘공자의 침묵, 그 너머’입니다.

병상에서 공자가 침묵할 때 밖에선 새가 울었겠죠, 바람이 불었겠죠, 구름이 흘렀겠죠, 별이 빛났겠죠. 그렇게 온 우주가 숨을 쉬었겠죠. 그 숨결이 바로 공자의 유언입니다. 공자는 말했죠. “사시가 운행되고 만물이 생장한다. 하늘이 무슨 말을 하던가?”

그게 바로 하늘의 말입니다. 공자는 침묵하고 하늘이 말을 하는 겁니다. 사시의 운행과 만물의 생장을 통해 하늘이 말을 하는 거죠. 귓가를 스치는 바람소리, 처마 끝에 떨어지는 빗소리, 봄이 되면 돌아오는 제비의 울음소리를 통해 하늘이 말을 하는 거죠. 그때는 둘이 아닌 거죠. 하늘의 소리와 공자의 소리, 하늘의 호흡과 공자의 호흡이 하나입니다. 나와 하늘이 둘이 아니니까요. 그래서 죽음의 순간, 약산 선사도 호탕하게 웃었겠죠. 육신이 무너져도 하늘이 남기 때문입니다.

공자는 “40세에 불혹(不惑·혹하지 않음), 50세에 지천명(知天命·하늘의 뜻을 앎), 60세에 이순(耳順·하늘의 뜻을 따라 순해짐), 70세에 종심(從心·나의 뜻이 하늘의 뜻에 어긋나지 않음)”이라고 했죠. 공자는 만 72세, 종심의 경지에서 세상을 떠났습니다. ‘종심’은 ‘마음을 따른다’는 뜻이죠. 누구의 마음을 따르는 걸까요. 그렇습니다. 하늘의 마음과 통하는 나의 마음이죠. 그래서 내 뜻을 따라도 하늘의 뜻에 어긋나지 않는 겁니다. 유언의 순간, 공자는 침묵을 통해 ‘침묵 너머의 소리를 들으라’고 한 거죠.

백성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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