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회 삼성화재배 세계바둑오픈'
<8강전>
○·왕 시 9단 ●·황이중 7단
과연 이후의 진행은 처참했다. 흑A를 당하면 좌변 대마가 죽으니까 백은 116, 118을 서둘러야 했다(118 대신 ‘참고도’ 백1 쪽으로 끊을 수 있다면 이쪽이 월등히 좋다. 그러나 이때는 흑도 태도를 바꿔 귀를 살린다. 2, 4로 잡는 순간 귀가 완생이기 때문에 흑은 여유있게 6을 선수하여 수를 늘린 뒤 8로 대마를 잡으러 가게 된다).
흐름을 타고 123까지 힘을 비축한 흑은 125를 선수하고 127로 빠져 하변을 통째 수중에 넣는다. 그야말로 상전벽해다. 본거지를 다 내준 백은 쪽박을 차고 거리로 나앉게 됐다. 이때가 시각적으로는 백의 패배가 확연해진 장면일 것이다. 하지만 왕시 9단의 저력은 대단했다. 그는 이 판을 100여 수나 더 끌고 나갔고 1집 반까지 차이를 좁혔다. 황이중 7단이 결정타를 던지지 않고 양보를 거듭한 탓이다. 요즘 같은 속기시대에 이 같은 안전운행은 장점일 수도 있지만 한계일 수도 있다. 127수 이하는 총보로 미룬다.
박치문 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