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회 삼성화재배 세계바둑오픈] 상전벽해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3면

'제13회 삼성화재배 세계바둑오픈'

<8강전>
○·왕 시 9단 ●·황이중 7단

 제8보(110∼127)=미리 밝히지만 이 판은 백이 졌다. 249수까지 진행되어 흑이 1집 반을 이겼다. 그렇다면 흑의 승리는 언제 결정되었을까. 박영훈 9단은 115로 하변이 뚫렸을 때라고 말했다. 백은 초반에 하변에 많은 투자를 했다. 말하자면 하변은 백의 본거지라 할 수 있는데 이곳이 무인지경으로 돌파당한 것은 백의 실패를 결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라고 했다.

과연 이후의 진행은 처참했다. 흑A를 당하면 좌변 대마가 죽으니까 백은 116, 118을 서둘러야 했다(118 대신 ‘참고도’ 백1 쪽으로 끊을 수 있다면 이쪽이 월등히 좋다. 그러나 이때는 흑도 태도를 바꿔 귀를 살린다. 2, 4로 잡는 순간 귀가 완생이기 때문에 흑은 여유있게 6을 선수하여 수를 늘린 뒤 8로 대마를 잡으러 가게 된다).

흐름을 타고 123까지 힘을 비축한 흑은 125를 선수하고 127로 빠져 하변을 통째 수중에 넣는다. 그야말로 상전벽해다. 본거지를 다 내준 백은 쪽박을 차고 거리로 나앉게 됐다. 이때가 시각적으로는 백의 패배가 확연해진 장면일 것이다. 하지만 왕시 9단의 저력은 대단했다. 그는 이 판을 100여 수나 더 끌고 나갔고 1집 반까지 차이를 좁혔다. 황이중 7단이 결정타를 던지지 않고 양보를 거듭한 탓이다. 요즘 같은 속기시대에 이 같은 안전운행은 장점일 수도 있지만 한계일 수도 있다. 127수 이하는 총보로 미룬다.  

박치문 전문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