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윤증현 장관은 방망이 짧게 잡기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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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윤증현 경제팀의 출범은 속도전을 방불케 했다. 이명박 대통령은 그제 밤 9시 집무실에서 전자결재를 통해 기획재정부 장관 임명안에 서명했다. 이런 형식파괴에는 경제사령탑을 1분1초라도 비워놓을 수 없다는 위기감이 묻어난다. 윤 장관도 취임 기자회견에서 “올해 경제는 내수와 수출의 동반 감소로 연간 -2% 정도 주저앉을 것”이라며 마이너스 성장을 공식 언급했다. 또 취업자는 20여만 명 감소할 것으로 전망했다. 당초 10만 명 증가에서 30만 명이나 내려잡은 것이다. 올해 경제상황은 그만큼 절박하다.

정책 담당자가 바뀐다고 경제지표가 한순간에 좋아질 리는 없다. 새 경제팀이 최우선 정책 목표로 잡은 ‘내수 진작을 통한 일자리 창출과 신속한 구조조정’도 전임 강만수 경제팀의 노선과 별반 다르지 않다. 현재의 경제위기를 치유하기 위한 만병통치약은 없다. 이런 때일수록 정석대로 풀어나가는 수밖에 없다. 당장 마이너스 성장에 따른 일자리 감소 충격부터 완화시키는 게 급선무다. 하루빨리 15조원 이상의 추가경정예산을 편성해 재정지출을 앞당겨야 할 것이다. 마이너스 성장이 분명해진 이상 부실기업은 보다 과감히 정리할 필요가 있다. 정부도 은행권에만 맡겨두지 말고 적극 힘을 보태야 구조조정 작업이 제대로 굴러갈 수 있을 것이다.

윤 장관은 “요술 방망이는 없다”는 말로 새 경제팀에 대한 지나친 기대를 경계했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방망이를 너무 길게 잡고 휘두른 전임 경제팀의 실수는 반복하지 말아야 한다. 전임 경제팀은 ‘747’이나 ‘한반도 대운하’ 같은 거창한 홈런에 집착하다 불신을 자초했다. 수출을 늘리려는 무리한 욕심은 환율정책의 혼선을 불렀다. 볼카운트가 불리할수록 방망이는 짧게 잡아야 한다. 그래야 한 치 앞을 내다보기 어려운 경제위기에 대응할 수 있다. 윤 장관도 “끝내지도 못할 일을 쏟아내진 않겠다. 필요한 시기에, 필요한 강도로, 필요한 부문에 정책을 집행하겠다”고 다짐했다. 이런 약속이 실제 행동으로 지켜지는지 우리는 지켜볼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