숭례문 유물 찾는 ‘여자 인디애나 존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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숭례문 유물 발굴을 지휘해 온 국립문화재 연구소 학예연구사 최인화씨(29)가 지난 9일 현장 공개를 앞둔 숭례문 터를 둘러보고 있다. [조문규 기자]

숭례문 복구 현장엔 스스로 ‘노가다’라 칭하는 여장부가 있다. 하루 8시간 넘게 삽질을 한다. 숭례문 유물 발굴을 지휘하는 최인화(29·여)씨다.

국립문화재연구소 학예연구사인 그는 ‘여자 인디애나 존스’로 불린다. 삽이며 호미·곡괭이를 쥐고 땅을 파면서 유물을 캐는 솜씨가 보통이 아니다. 무너진 숭례문을 직접 복구하는 건 아니지만 600년 숨결 안에 숨은 유물을 찾는 소중한 작업이다. 인턴 3명, 인부 10여 명과 함께 종일 쭈그리고 땡볕에서 일한 탓에 무릎엔 관절염이 생겼고, 피부과 치료까지 받는다.

그가 현장에 나타난 건 숭례문이 화마로 무너진 뒤 넉 달 만인 지난해 6월이었다. 일찌감치 유물을 발굴할 1순위 후보자로 꼽혔다.

부산대 고고학과를 나온 최씨는 학계에서 드문 ‘조선시대 궁궐 건물터’를 전공했다. 2004년엔 드라마 ‘대장금’으로 유명해진 경복궁 수라간 터를 시작으로 3년간 경복궁 발굴을 주도했다.

숭례문 개방을 하루 앞둔 9일 현장에서 만난 그는 “지난해 2월 10일을 잊을 수가 없다”고 했다. “숭례문 설계도가 없어 불 끄기 어렵다는 말에 발만 동동 굴렀죠. 갖고 있는 구조 설계도라도 얼른 전하고 싶었지만 순식간에 전소됐어요.” 그때부터 최씨는 ‘국보 1호가 무너진 현장을 꼭 내가 발굴하겠다’고 다짐했다고 한다.

여름엔 찌는 더위에도 화상을 막으려 긴 옷을 입고 몇 시간씩 삽질을 했다. “첫 삽질 때 단단한 흙이 부서지더니 숭례문 터가 속살을 드러냈죠. 가슴이 얼마나 콩콩 뛰던지….” 그리고 지난해 10월 16일, 흙 속에 거꾸로 박힌 백자 향로가 두 다리를 드러냈다. “심봤다.” 최씨는 자기도 모르게 외쳤다. “궁궐 터에서도 나오기 힘든 유물이 민가가 있던 숭례문 터에서 나온 게 신기할 뿐이었죠.”

그는 “지금부터가 하이라이트”라고 말했다. 담장 주변의 민가터를 발굴하면 더 많은 역사적 유물이 나올 것이라고 했다. 최씨는 “역사적 장소가 완벽히 복원되도록 혼신의 힘을 다하겠다”며 “일반인 대상의 유물 발굴 프로그램을 만들어 역사가 얼마나 소중한지 느끼도록 돕는 것이 꿈”이라고 말했다.

김진경 기자 , 사진=조문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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