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구에서>6. 화성군 마산포 (1)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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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3면

불가사리와 조개마저 숨을 멈췄다.

시화호 갯벌. 10년전만 해도 복이 넘쳤던 황금갯벌엔 더 이상 꽃게도 바지락도 살지 않는다.

그러나 최근 이곳에도 몇몇 '임자' 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1년전부터 갈대가 뿌리를 박고 공허한 해풍에나마 잎새를 서걱이기 시작했다.

키 작은 갯가식물인 칠명초도 여의도보다 60배나 크다는 황량한 소금벌을 제땅 삼아 왕성한 생명력을 보여주고 있다.

소리도 들린다.

엔진소리. 개발만능의 탐욕과 졸속이 빚은 시화지구와는 어울리지 않게 이 기계음 속엔 즐거움마저 실려있다.

바로 하늘을 나는 초경량항공기 (ULM) 동호인들의 비행나들이다.

13일 마산포 (경기도화성군송산면고포리) 상공. 비행동호회인 날개를 비롯, 골드윙.럭키항공등 클럽소속의 ULM 7~8대가 이젠 명색만 남은 포구상공을 비행하고 있다.

"그래도 저 젊은이들이 큰 손님이여" .이곳에서 20년째 횟집을 경영중인 이준재 (67) 씨는 주말마다 30명씩 모이는 '비행기 타는 사람들' 이 무척 반갑다.

5~6년전만 해도 마산포는 제법 알려진 포구였다.

지난날 임금에게 진상했다는 '마산포 굴' 은 씨알이 굵고 싱싱해 이름만 들어도 식도락가들의 군침을 돌게했다.

이밖에 꽃게.낙지.바지락.맛.대합등 포구의 입맛을 위해 20~30분에 한 대씩 수원에서 들어오던 마산포행 버스가 평일에도 만원이었다.

"게들이 식당앞에서 벌벌 기어다녔지. 갯벌로 스무발짝만 걸어나가면 바로 굴밭이었으니까" .29년째 이곳 식당일을 해온 이순이 (67.여) 씨는 마산포 앞이 '갯벌이 아니라 황금' 이었다고 말한다.

손님들이 횟집 창문에 망둥이 낚시대를 걸어놓고 손맛과 입맛을 한꺼번에 즐기곤 했다.

그러나 '마산포 굴' 이나 '황금갯벌' 모두 허망하게 사라졌다.

92년 1월24일 시화방조제 완공과 함께 바다가 막혔고 말라버린 바다는 아무 것도 내놓지 않았다.

불임의 갯벌. 손님까지 뚝 끊겼다.

비행동호인들의 발길은 그래서 더욱 마산포주민들에게 '가뭄의 단비' 처럼 반갑다.

이곳이 ULM 명소가 된 것은 지난 4월부터. 바닷물이 빠져 맨살을 드러내면서 천혜의 활주로가 생겼다.

바닥에 소금기가 배어 적당히 딱딱해진 자연활주로가 일망무제로 펼쳐져 쾌적한 이.착륙이 가능해졌다.

제부도.대부도등 자연경관도 일품이어서 동호인들은 아예 이곳을 '마산포활공장' 으로 부른다.

최근 5년간 텅빈채 방치됐던 해산물공판장은 동호인클럽 날개의 ULM격납고로 용도를 변경했다.

한때 풋풋한 해물비린내와 가격흥정으로 활기차던 포구의 삶이 레포츠로 명맥을 잇고 있으니 그나마 다행이랄까. 마산포엔 그래도 횟집이 서너군데 있고 주말마다 대처손님들이 '옛정을 잊지 못해' 1백여명씩 찾아든다.

한때의 영화가 잦아든 직후여서 사람이 적은 게 오히려 좋단다.

게다가 매주말 어김없이 시화지구 창공을 수놓는 천진난만한 ULM들. 이처럼 기묘한 부조화가 공존하는 마산포는 느낄 게 많은 곳이다.

글.사진 = 임용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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