黨政, 분리 넘어 '괴리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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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대통령과 열린우리당 사이에 냉기류가 흐르고 있다. 노 대통령의 정국 구상과 열린우리당 의원들의 목소리가 자꾸 엇박자를 내면서다. 발단은 김혁규 총리 카드에 대한 당내 반발에서부터다.

'김혁규 카드'는 노 대통령이 오랜 고민 끝에 내린 선택이었다는 게 중론이다. 하지만 당내 일부 소장파가 "총리를 지명하기 전에 당과 협의를 거쳤어야 했다"며 문제를 제기해 결국 김혁규 카드는 물거품이 됐다. 사실상 한나라당보다 당내 반발로 대통령이 물러선 셈이다. 여권 핵심 관계자는 11일 "노 대통령이 당내 반발로 김 전 경남지사를 총리에 임명하지 못한 데 대해 매우 섭섭하게 생각한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일부 초.재선 의원은 노 대통령이 당.청의 가교로 임명한 문희상 의원도 대통령 정치특보에서 낙마시켰다. 문 의원이 김 전 지사의 총리 지명과 관련, 대통령의 인사권을 존중해야 한다고 강하게 피력하자 일부 소장파 의원이 "청와대에서 파견한 총독이냐"며 반발했기 때문이다.

그 뒤 당에 대한 노 대통령의 행보도 싸늘해졌다.

공공 아파트 분양 원가 공개와 관련, 노 대통령이 지난 9일 민주노동당 지도부와의 만찬에서 공개적으로 반대 의사를 밝혀 열린우리당을 난감하게 만들었다. 지난 4일 당.청 협의에서 신기남 의장이 노 대통령과의 정례 회동을 건의했지만 노 대통령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또 신기남 의장과 천정배 원내대표는 지난 8일 당.청 협의 직전까지 이해찬 의원의 총리 지명 사실을 언질받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 문희상 의원은 기자들과 만나 "기본적으로 대통령이 자신의 정치철학에 대해 당 지도부가 충분히 이해하지 못한다는 점에서 실망한 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대통령이 확고한 당정 분리를 얘기하는데 그럼에도 신 의장이 정례회동을 하자고 하니 답답해 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반면 당 일각에도 노 대통령을 향한 불만이 제기된다. 청와대가 정책 결정과 총리 지명 과정에서 조금도 당을 배려해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런 가운데 당.청 간 혼선을 줄이기 위해 공식 라인을 만들어야 한다는 의견이 고개를 들고 있다. 하지만 문 의원은 "정무장관 등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은 정말 대통령이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라고 지적해 당내에 또 다른 논란이 일 조짐이다.

신용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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