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차 1천만대 시대의 그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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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바야흐로 우리도 자동차 1천만대 시대에 살게 됐다.

85년 1백만대를 넘어선 이래 12년만의 기록이다.

이는 그동안 우리 경제가 세계에서 주목할 만한 놀라운 성장을 거듭해 왔음을 시사하는 것임엔 틀림없다.

그러나 급속히 이뤄낸 물질적 풍요 뒤에 가려져 있는 부담과 고통을 생각해 보면 결코 기뻐할 수만은 없다고 본다.

지금 우리가 겪는 교통문제는 단순히 차가 막히는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

바로 경제문제고 정치문제며 사회문화적 문제인 것이다.

과다한 물류비용 지출로 인해 산업경쟁력이 떨어지고, 그 결과 경제활동에서 막대한 손실을 보고 있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수치로 우리 현상을 간단히 훑어보자. 교통혼잡으로 도로에서 발생하는 경제적 손실액이 96년 국민총생산 (GNP) 의 3. 6%인 14조6백억원, 교통사고 피해보상으로 지출된 비용이 연간 7조4천억원, 자동차 배기가스로 인한 대기오염 정화에 소요되는 비용 11조원, 이것들만 합쳐도 지난 한햇동안 우리는 차량이용의 대가로 총 32조5천억원을 치른 셈이 된다. 그외 차량구입비.유지비 등 가계소득의 20%에 달하는 개인차원의 지출과 사회전반에서 지출되는 비용까지 다 합치면 아무리 숫자에 무뎌진 우리라 할지라도 그 엄청난 액수에 놀라게 된다.

또한 대다수 국민이 거의 매일 교통불편을 겪으며 일상생활의 영위가 어려운 지경에 이르렀다며 분노를 토해내는 우리의 현실, 도시주민 민원 1위가 다름아닌 교통문제란 현실은 교통문제가 실로 심각한 지경에 이르렀다는 것을 뜻한다.

이는 바로 정부의 제반 정책에 대한 불신과 나아가 정치권 전체에 대한 불만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96년 한해 교통사고로 약 1만2천5백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난 한햇동안 살인사건 사망자 수가 8백여명이었으니 충분히 비교가 가능하리라 본다.

우리나라에서 몇년간 살았던 한 외신기자는 "한국에서 운전하는 것은 러시안 룰렛게임보다 더 스릴이 있다" 고 지적한 바 있다.

러시안 룰렛이란 참가한 사람중 한사람은 반드시 죽게 되는 끔찍한 게임으로 목숨을 담보로 해야만 거리로 나갈 수 있는 우리의 교통현실을 꼬집은 것이다.

환경의 중요성이 날로 커져가는 이때 대기오염의 주범 역시 자동차로 볼 수 있다.

연간 1백일이상 발생하는 스모그 현상, 수시로 접하는 오존주의보, 인체에 치명적인 아황산가스.일산화탄소.미세분진등으로 오염된 공기, 이 모두가 폭발적인 차량의 증가가 빚어낸 현상들이다.

주차여건의 악화로 집앞의 주차시비 끝에 살인까지 발생하는 현실에서 오늘날의 자동차 1천만대 시대를 넘어 곧 이어 다가올 1천5백만대, 2천만대에 우리의 생활여건은 어떻게 될 것인가.

그렇다면 자동차 1천만대 시대를 맞은 현 시점에서 우리는 앞날에 대해 우울한 그림만 그리고 있을 것인가.

아니다.

우리 모두가 문제점을 뼈저리게 느끼는 이상 하루라도 빨리 문제의 핵심을 찾아 반성하고 책임을 공유하며, 방법을 찾아내 고쳐나가야만 한다.

교통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정책당국의 획기적인 시각 전환과 이를 믿고 따라주는 시민, 나아가 국민의 행태변화가 철저히 같이 나가야만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쾌적하게 살 국민의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교통문제만은 반드시 해결하겠다는 정부의 강한 의지다.

그동안 추진해온 다양한 정책을 바탕으로, 이제는 국민의 피부에 와닿는 구체적이고 실현가능한 각론중심의 다각적인 정책추진이 절실히 요구된다.

경우에 따라서는 기존 행정관행의 틀을 과감히 벗어나는 어려움이 요구될 수도 있을 것이다.

정부가 앞장서 의지를 보여주면 그간 교통문제의 최대 피해자이며 일변 원인제공자이기도 한 국민은 다시금 자신들을 돌아보며, 같은 목표를 위해 뛸 것이다.

바람직한 교통문화의 정착을 위해 서로를 견제.격려하며 가족들과 여유있게 귀성길.휴가길에 오르는 그날을 기대하며 앞장서줄 것이다.

지금이야말로 범정치적.범사회적.범국민적인 교통문화 개혁이 절실한 시점이다.

<강승필,교통개발연 선임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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