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 요령보다는 열정, 지식보다는 지혜를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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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호 12면

“글쎄, 전 제 삶의 모습을 바꾸고 싶지 않다니까요.”(장혜란씨)
“사연을 소개하면 취업 준비생들에게 도움이 될 텐데, 한번만 다시 생각해 주세요.”(기자)
“안 됩니다. 전 기사에서 빼 주세요. 그게 제 원칙이에요.”(장혜란)
“….”(기자)

취업 장벽 넘으려면

지난주 중앙SUNDAY 마감 1시간 전쯤의 일이다. 1일자 중앙SUNDAY 1면 ‘非SKY대 출신 7인, 대기업 멀티 합격 비결’ 기사의 주인공 가운데 하나인 장혜란(가명)씨가 전화를 걸어왔다. 기사 출고를 앞둔 상황에서 난감할 수밖에 없었다. 장씨가 인터뷰에 응했던 것은 가벼운 설문조사 정도로 생각했다는 설명이었다. 5분 이상 설득과 거절이 반복됐다.

말로 백 번 좋은 기획 의도를 설명하는 것보다 기사를 읽어 주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자는 작성한 기사를 장씨에게 읽어 줬다. 그래도 부정적 반응이 나오면 뭐라고 설득해야 할지….

기사가 게재된 중앙SUNDAY 2월 1일자 지면.

머릿속이 복잡했을 때 수화기에서 “그럼, 이름은 가명으로 해 주세요”라는 뜻밖의 소리가 흘러나왔다. 설득이 받아들여진 것이다. 이렇게 해서 기사에 등장한 7명 중 장씨만 가명으로 소개됐다.

장씨가 양보해 준 덕분일 것이다. 기사가 나가고 이틀 뒤 중앙SUNDAY에서 인턴 과정을 밟고 있는 대학생 기자들이 반응을 알려왔다. “선배, 주말 동안 신입사원들 기사가 ‘싸이월드’에서 가장 스크랩을 많이 한 기사 1위였어요.”

젊은이들이 즐겨 찾는 싸이월드라 그런지 취업 기사에 관심이 더 컸던 것 같다. “‘취뽀’에 대한 좋은 뉴스를 오늘 봤다”며 인터넷 카페나 자기 블로그에 글을 퍼 나른 네티즌도 꽤 됐다(‘취뽀’는 취업 뽀개기의 준말. 요즘 대학생들은 취업 성공을 이렇게 부른다). 싸이월드의 본지 기사에는 댓글만 988개가 달려 있었다. 중앙일보 조인스닷컴에서도 호응이 적지 않았다. 7명의 신입사원에 대한 기사는 조인스닷컴의 ‘소나기 클릭’ 코너에서도 조회수 상위권을 유지했다.

댓글 가운데는 아픈 지적도 많았다.
“난 지방대생의 성공기가 보고 싶을 뿐이고” “이공계는 적네” 등등.
기획 단계에서 미처 생각하지 못했거나 부족했던 점이다.

기우일지 모르지만 걱정되는 점도 있다. 예컨대 기사에 회사에 대한 애정을 노래로 표현해 면접을 통과한 여대생 얘기가 등장한다. 그렇다고 면접자 모두가 앞으로 면접장에서 노래를 부르면 면접은 어떻게 될까. 7명의 합격자가 여러 가지 자기만의 비결을 소개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취재 과정에서 기자가 느낀 그들의 진정한 합격 비결은 정말 치열하게 살았다는 점이다. 자기를 발견하고 길을 찾기 위해 오래전부터 진지한 고민이 있었음은 물론이다. 아르바이트 하나를 하더라도 말이다. 그러다 보니 대학 졸업 때까지 10~20개 이상의 공모전 수상 경력이나 남이 잘 눈여겨보지 않던 자격증, 다양한 ‘커리어’가 생겼다. 하루아침엔 결코 이룰 수 없는 것들이다.

이런 과정에서 그들은 자신만의 ‘브랜드’를 만들었다. 중앙SUNDAY가 전달하려 한 것은 사실 취업의 ‘요령’보다는 ‘열정’, ‘지식’ 보다는 ‘지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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