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 탐구를 시작하며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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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호 14면

어제 나는 안방으로 들어가다가 하마터면 비명을 지를 뻔했다. 아내가 있어야 할 자리에 웬 할머니가 앉아서 금방이라도 튀어나올 것 같은 커다란 눈으로 나를 바라보는 게 아닌가. 할머니는 읽던 책을 내려놓으며 돋보기 안경을 벗는다. 아내다.

남편은 모른다

“왜 그래요?”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근데 당신 언제부터 돋보기 썼어?”
“지난해 봄부터. 새삼스럽게 그건 왜?”
“아… 그랬구나.”

그랬다. 아내가 책이나 신문을 읽을 때 돋보기를 사용한 게 일 년이나 지난 것이다. 나는 까맣게 몰랐다. 아내에게 노안이 찾아와서 뭘 좀 자세히 보려고 하면 눈을 찡그리고 심술 난 사람처럼 인상을 쓴 게 벌써 몇 년째인데 말이다.

정말 눈 나쁜 사람은 아내가 아니라 바로 나다. 이십 년이나 남편이랍시고 행세하고 있는 이 무심한 화상이다. 비로소 나는 깨닫는다. 남편은 아내를 모른다. 함께 밥을 먹고 잠을 자고 사랑을 나누고 아이들을 낳아 기르며 그렇게 같이 살지만 도대체 아내가 누구인지 어떤 사람인지 모르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아내라는 낯익은 혹은 낯선 인격적 공간을 탐사하기로 했다. 가령 아내의 초등학교 시절 사진이라든지, 아내가 벗어놓은 구두라든지, 읽다 만 책에 그어진 밑줄이라든지, 어느 날 발견한 아내의 입가 주름이라든지, 아내의 어릴 적 별명이라든지, 장래 희망이라든지, 여고생 아내에게 어떤 남학생이 보내온 연애편지라든지, 왼쪽 다리 무릎 아래에 난 흉터라든지, 아내의 휴대전화 초기화면 문구라든지. 그런 희미하고 사소하고 시시콜콜한 것들에서 나는 아내를 찾아보고 싶다.

내가 발견하게 될 아내가 어떤 사람일지 아직 나는 모른다. 그러나 한 가지는 분명하게 알겠다. 이 탐사과정을 통해 아내라는 한 인간을 더 깊이 이해하고 더 많이 사랑하게 될 거라는 사실을.

그건 그렇고 조만간 가까운 안과에라도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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