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브홀릭’때의 낯선 감정 솔로앨범서 다 날렸어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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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이런 사람들이 있다. 자신이 딛고 선 자리를 항상 낯설고 불안하게 느끼는 이들. 3인조 인기밴드 ‘러브홀릭’의 여성 보컬로 활동하던 지선(본명 황지선·30·사진)씨도 그랬다. 주변에서는 “음악성·대중성을 함께 갖춘 보기 드문 팀이다” “실력이 탄탄한 오빠(강현민·이재학)들이 있는데 네가 무슨 걱정이냐” 했지만 스스로는 늘 “여기가 정말 내 자리일까” 싶었다.

“내가 ‘러브홀릭’이라는 이름에 걸맞는 실력을 갖춘 사람일까, 이 정도 능력으로 가요계에서 언제까지 버텨낼 수 있을까 고민이 많았어요.”

이 길이 아니라면 더 늦기전에 새로운 길을 찾아야 한다는 조바심이 일었다. 한동안 온 마음을 다해 뛰어들었던 사랑이 끝난 것도 결심을 부추겼다. 주변의 만류를 뒤로 하고 팀 탈퇴를 선언한 2007년 상황이었다.

2년 여의 공백기를 거쳐 ‘인어, 돌아오다’라는 첫 솔로앨범을 들고 돌아온 지선은 한결 가뿐해 보였다. 왕자님과 행복해지는 꿈을 꾸던 인어가 슬픈 사랑을 끝내고 결국 자신의 자리로 돌아온다는 앨범 컨셉, 눈치챘겠지만 지선 본인의 이야기다.

“가수를 그만두겠다고 결심한 뒤 일본 오키나와에 3개월간 머물면서 ‘그림을 그려볼까? 떡볶이집을 차려 볼까?’ 여러 생각을 했어요. 그러다 어느 시골 마을의 작은 카페에 갔는데 할아버지와 젊은 청년들이 밴드를 만들어 연주를 하는 거예요. 그들이 너무 행복해보이더라구요.” 나는 한번이라도 저렇게 음악을 즐겨본 적이 있었나, 끝까지 가보지도 않고 이렇게 도망쳐도 되는 걸까, 마음이 다시 음악쪽으로 기울기 시작했다.

그동안의 방황을 정리하는 의미로 노래를 한곡한곡 써 나갔다. 이렇게 탄생한 열 세곡의 노래가 본인의 이름을 내건 첫 앨범에 담겼다. 지선 특유의 몽환적인 보컬이 빛나는 타이틀곡 ‘안녕 사랑아’에서 위험한 사랑의 설레임을 노래한 ‘롤러코스터 러브’, 사랑을 끝낸 남녀의 독백을 담은 알렉스와의 듀엣곡 ‘윈드플라워(Windflower)’까지 앨범 전체가 하나의 스토리 안에서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가사는 우울하지만 신디사이저가 바탕이 된 신스팝(Synthpop) 스타일의 멜로디는 전체적으로 경쾌하다.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을 무겁지 않게 전달하고 싶었어요. ‘러브홀릭’에서 익힌 ‘대중성의 감각’을 잊지 않으려 했죠.”

자신의 모든 것을 고스란히 담은 이런 앨범은 “아마 앞으로도 영원히 만들지 못할 것”이란다. 그만큼 자신이 있고, 기대도 크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힘들게 돌아온 자리인만큼 성공과 실패를 떠나 즐기며 노래하는 가수이고 싶다.

“예전에는 ‘노래하는 지선’ 때문에 ‘인간 지선’이 불행하다고 느꼈어요. 이제는 ‘노래하는 지선’이 있어 ‘인간 지선’이 행복해질 차례입니다.”

글=이영희 기자, 사진=안성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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