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중학생들 교환일기 쓰기 유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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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호출기 사서함이나 컴퓨터 통신이 보편화되면서 편지나 일기가 골동품으로 취급받는 가운데 편지와 일기의 중간형태인'교환일기'가 등장,초.중학생들 사이에 폭발적으로 유행하고 있다.

교환일기란 친한 친구끼리 한권의 일기장을 사서 번갈아가며 쓰는 것.초등학교 5~6학년이나 중학교 1학년 일부 학급에선 여학생들의 절반이상이 사용하고 있을 만큼 인기다.지난 달엔 소설'머나먼 쏭바강'의 작가 박영한(朴榮漢)씨가 초등학교 6학년인 둘째 아들이 여자친구와 실제 주고 받은 교환일기를 출판하기도 했다.

사실 교환일기는 일본에서도 같은 이름으로 꽤 오래 전부터 유행해왔던 것.5년전 일본에서 초등학교를 다닐 때 그곳 친구들과 교환일기를 처음 써보았다는 박혜원(15.서울강남구C중학교3학년)양은“떠나올 때 기념으로 내가 받아온 그 일기장을 보면 지금도 그곳 생활은 물론이고 친구들과의 우정이 새록새록 떠오른다”고 예찬론을 폈다.

시나 노랫말까지 인용,직접 글을 쓰는 이'복고현상'에 대해 김인경(金仁經.청소년심리학.연세대강사)박사는“부모들조차도 편지나 일기 쓰는 것을 보지 못한 현재의 10대에겐 그것이 오히려 자기네만의 색다른 방식으로 느껴질 수 있다”고 분석한다.'단짝'과 함께 모든 비밀을 공유함으로써 친밀감을 표현하고 싶은 것은 그 또래의 자연스런 감정.그래서 또래집단과의 소속감을 느끼게 해주는 수단이자 원만한 인간관계형성을 위해서도 좋은 경험이 될 수 있다고 그는 평가한다.

그러나 남녀 학생들끼리 번갈아 쓰는 경우 종종 노골적인 사랑표현이 등장하기도 해 이를 발견한 부모들을 당황케하고 있다.남녀합반인 경기도분당시 I중학교 1학년 학생들간에는 한반에 10명 정도가 남녀공동으로 교환일기 쓰기에 참여하고 있는데,일부 남학생들이 TV드라마속의 대화나 광고문구를 이용,“키스하고 싶은 너의 머릿결이 그립다”등의 표현을 해놓고 동성(同性)친구들에게 자랑삼아 보여주기도 한다는 것. 한준상(韓駿相.연세대 교육학)교수는“아직 남녀교제가 개방화되지 못한 데 대한 반작용일 수 있으므로 부모들이 무조건 걱정할 필요는 없다”며“일기는 엄연한 사생활의 비밀이므로 못본 척 하면서 우회적으로 이성친구와의 관계를 부모에게 공개하도록 유도하는 것이 좋다”고 조언했다.

김정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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