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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네르바와 '허위의 통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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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소설가 김훈(61)씨는 기자 출신이다. 요즘도 원고지에 연필로 글을 쓰는 까닭이 기자 시절 습관 때문이 아닌가 짐작한다. 한국 신문사 대부분은 1980년대 후반까지 원고지에 기사를 썼다. 그 시대를 웅변하는 삽화 하나가 전설처럼 내려온다. 당시 기자들이 넘긴 글을 손보던 부장은 원고지에 볼펜으로 쓴 기사 위에 빨간 사인펜으로 교정을 했다. 자신이 힘들여 작성한 글을 엉뚱하게 고치는 부장 탓에 속병을 앓던 기자가 어느 날 꾀를 냈는데 그가 내민 원고지를 본 부장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해졌다. 기사를 아예 빨간 사인펜으로 쓴 것이다. ‘이름 걸고 쓰는 글 함부로 고치지 말라’는 무언의 항의치곤 꽤 셌다.

김훈씨는 지난해 펴낸 산문집 『바다의 기별』에서 글 쓰는 자가 얼마나 엄정해야 하는가를 보여주는 체험 하나를 털어놨다. 그가 장편소설 『칼의 노래』를 쓸 때 얘기다. 『칼의 노래』는 ‘버려진 섬마다 꽃이 피었다’로 시작한다. 이순신 장군이 백의종군해 남해안에 내려왔을 때 배와 송장이 떠돌아다니는 바다에 봄이 오는 풍경을 묘사한 대목이다. 원래 첫 문장은 ‘버려진 섬마다 꽃은 피었다’였다고 한다. 김씨는 며칠 있다가 담배를 한 갑 피우면서 고민 끝에 ‘꽃이 피었다’라고 고친다. 단 한 개의 조사(助詞) ‘은’과 ‘이’ 사이를 작가는 ‘하늘과 땅 차이’라고 했다. ‘꽃이 피었다’는 꽃이 핀 물리적 사실을 객관적으로 진술한 언어이고, ‘꽃은 피었다’는 꽃이 피었다는 객관적 사실에 그것을 들여다보는 자의 주관적 정서를 섞어 넣은 것이라는 설명이다. 이 둘을 구별하지 못하면 문장은 몽매해진다고 그는 썼다.

한국어는 이렇듯 조사 하나에 따라 의견의 세계와 사실의 세계가 바뀐다. 겨우 한 음절인 조사, 그것도 몇 개 안 되는 조사 때문에 우리말은 때로 모호해진다. 김훈씨는 한국어로 글을 읽고 사유한다는 것은 조사를 읽고 조사를 경영한다는 것과 같은 뜻이라며 “조사가 없는 나라에서 살고 싶다”고까지 말한다.

허위 사실 유포 혐의로 구속 수감된 인터넷 논객 박대성(30)씨가 28일 헌법재판소에 위헌 소송을 냈다. 박씨는 자신에게 적용된 전기통신기본법 제47조 1항, 즉 ‘공익을 해할 목적으로 전기통신설비에 의하여 공연히 허위의 통신을 한 자는…’ 조항에서 공익의 개념이 모호해 죄형법정주의에 어긋난다고 주장한다. 또 인터넷에 올린 글을 허위 사실이라 단정할 수 없다며 보석신청도 냈다. 하지만 전혀 다른 각도에서 이 문제를 바라보는 사람도 있다.

민주당 이석현 의원실은 “위헌 소송보다도 법 적용이 잘못되었음을 들어 무죄 주장 하는 편이 더 쉬우리라고 본다”는 요지의 의견을 냈다. 이 의원실은 “(이 조항에서 말하는) ‘허위의 통신’은 허위 사실 유포를 뜻하는 것이 아니고 발신자를 오인시키는 위장 통신임이 분명하기 때문”이라고 그 근거를 밝혔다. 예컨대 검찰이 아닌데 검찰을 가장(假裝)해 불특정 다수에게 문자를 전송하는 경우다. 따라서 미네르바가 인터넷에 올린 글이 허위 사실이냐 아니냐를 가리는 것은 이 법이 가리키는 ‘허위의 통신’과는 거리가 한참 먼 이야기라는 것이다.

여기서 김훈씨를 그토록 고민하게 만든 조사의 문제를 짚어봄 직하다. 허위의 통신에서 ‘의’를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 허위로서 통신했다는 것인가, 허위를 통신했다는 것인가. 법이 뜻하는 허위의 통신이 형식상의 허위가 아니라 내용상의 허위라면 조사 ‘의’는 차라리 없애는 편이 법령을 더 적확하게 해줄지 모른다. 소설가를 진저리치게 한 조사 하나가 여러 사람을 울릴 수 있기 때문이다.

미네르바 재판부는 2월 5일 첫 공판준비절차를 열어 재판의 쟁점을 정리할 예정이라고 한다. 법 적용에 오류가 있다면 바로잡아야 마땅하다. 인터넷 토론문화가 없던 83년에 제정된 법을 당시 입법 의도와 달리 엉뚱한 곳에 끌어다 쓰게 되면 앞으로 더 많은 사고를 불러올 위험이 크다. 우리 인터넷 환경에서 제2의 미네르바, 제3의 박대성이 나올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김훈씨는 “말이 허약하지 않고 완강한 돌덩어리나 철근처럼 생겨서 다른 어떠한 언어에 의해서도 부정당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말이라 할 수 없다”고 썼다. 제아무리 견고해 보이는 법조문일지라도 어차피 사람의 손으로 만들어지고 폐기되는 문장일 뿐이다. 하물며 그다지 명석해 보이지도 않는 낡은 문장 하나가 어느 날 갑자기 조자룡의 헌 칼 노릇을 한다면 당사자의 억울함은 말할 것도 없고 국민 일반의 정신 건강에도 이롭지 못할 것이다.

정재숙 문화데스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