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년 직장 접고 연극배우로 … ‘김형곤 형’ 부담 되네요”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4면

“열정만 있다면 그 무엇도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주고 싶었습니다.”

[연합뉴스]

개그맨 고 김형곤의 친형인 김형준(53·사진) 씨의 말이다. 삼성전자 국내 영업 사업부 인사담당 상무였던 김 씨는 이달 회사를 그만두고 연극 배우로서 새 인생에 도전하고 있다. 그는 대학로 라이프씨어터(대표 허정)에서 공연 중인 ‘수요일의 연인들’에서 주인공 ‘존’ 역을 맡아 무대에 서고 있다. 대학에서 전자공학을 전공하고 25년간 직장생활을 해오다 18일자로 퇴직했다.

그는 “이 나이에 연극배우가 된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겠지만 은퇴 뒤 새로운 도전을 하고 싶었다”라며 “자녀들에게 열정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려주고, 특히 아버지가 그런 열정이 있음을 보여주고 싶었다”라고 소감을 밝혔다. 그러면서 “동생이 왜 이 길을 걸어왔는지를 이해해 보고 싶다는 이유도 있었다”라고 덧붙였다.

하지만, 인생의 또 다른 무대에 적응한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는 “연습 중간 중간 그만 두고 싶은 생각이 든 것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라고 밝혔다. 거기에는 개그맨 김형곤의 ‘형’이라는 부담도 있었다. 한 달간의 연습 기간이 그에겐 너무도 길게 느껴졌다. 평소보다 몇 배나 큰 목소리로 발성 연습을 하다가 어떤 날은 목이 잠겨 말문이 트이지 않을 정도로 험난한 나날의 연속이었다. 그는 “공연이 시작되기 하루 전 소주 세 병을 마시고 극단 대표인 친구에게 ‘왜 나를 캐스팅했느냐’라고 푸념도 했다”라고 밝혔다.

이달 11일 첫 무대에 올랐을 때는 눈 앞이 캄캄했다. 바로 앞에 있는 관객들의 모습조차 볼 수 없었다. 두려웠다. 대중 앞에 섰다가 망신이나 당하지 않을까 걱정도 했다. 그때 하늘나라로 떠난 동생을 생각했다. 무대에서 좌중을 압도했던 동생의 생전 모습을 떠올리며 마음을 가다듬었다. ‘아빠는 멋쟁이’라며 든든한 후원자가 돼준 가족들도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세 번쯤 무대에 서고 나니 몸짓·표정을 어떻게 해야 될지 감이 잡혔다. 관객과의 호흡도 느껴졌다. 그는 “무대에 서면서 태어나서 처음 느껴보는 성취감을 얻었다”라며 “이제는 어떤 도전도 이겨낼 수 있을 것 같다”라고 말했다. 그는 “무대에 서보니 비로소 동생의 걸었던 길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라고 덧붙였다. 공연은 내달 4일까지.

 양광삼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