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1회용 의료기기 재사용 근절되지 않는 이유는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6면

국민의 건강을 위험에 빠뜨릴 수 있는 1회용 의료기기 재사용 관행이 여전히 근절되지 않고 있다. 국민권익위원회가 국공립 의원 3곳을 표본 조사한 결과 혈관에 넣어 막힌 부분을 뚫는 카테터 등 1회용 의료기기를 여러 차례 반복 사용한 사례가 적발됐다. 이들 기기는 다시 쓸 경우 환자들에게 치명적인 2차 감염을 일으킬 수 있다. 국민건강을 책임진 병원들이 어떻게 이런 짓을 할 수 있을까. 돈 몇 푼보다 환자들의 생명을 가벼이 여기는 부도덕함에 말문이 막힌다.

더욱 놀라운 건 현행법에 이 같은 비윤리적 의료 행태를 처벌할 명시적인 규정이 전무하다는 사실이다. 1회용 의료기기 재사용으로 인한 폐해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닌데 정부는 그동안 뭘 하고 있었는가. 그간 국회 차원에서 두 차례에 걸쳐 처벌 규정을 담은 의료법 개정안을 내놓았었지만 우선순위에서 밀려 부처 협의조차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고 한다. 늦었지만 이번에야말로 강력한 처벌 규정을 도입하지 않으면 안 된다. 병원 문을 닫게 하는 등 초강도 처벌이 아니라면 뿌리 깊은 관행을 뜯어고칠 수 없다.

1회용 의료기기 재사용 관행의 근절은 국민건강 보호뿐 아니라 건강보험 재정을 튼실히 하기 위해서도 서둘러야 한다. 권익위의 조사 결과 병원들이 1회용 의료기기를 실제로는 여러 번 사용했으면서도 한 번만 쓰고 버렸다고 신고해 진료비를 2~5배씩 부당 청구한 것으로 드러났다. 서민들은 보험료 부담에 허리가 휘는데 병원들은 보험기금을 갉아먹는 파렴치 행각을 벌여왔다니 기가 막힐 따름이다. 당국은 철저한 조사를 벌여 이런 부당 청구액도 전액 환수 조치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