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음악평론집 일본 진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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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3면

고정관념을 깨는 참신한 발상,강의를 그대로 옮겨 놓은 듯한 산뜻한 구어체로 국내 음악계에 신선한 충격을 주었던 이강숙(李康淑.61) 음악평론집'열린 음악의 세계'(80년)가 17년만에 일본에 진출했다.

일본 온가쿠노도모(音樂之友社)에서 같은 제목(開かれた音樂の世界)으로 번역출판된 이 책은 도쿄(東京)예술대 대학원에서 수학한 이숙정(李淑晶.영남대 강사)씨와 민경찬(閔庚燦.한국예술종합학교 음악연구소 책임연구원)씨가 번역을 맡았다.온가쿠노도모사는 10여종의 음악잡지를 비롯,악보.단행본을 발행하는 일본 최대규모의 음악출판사. 지금까지 간헐적으로 한국의 대중음악과 전통음악에 대한 번역서가 일본에 소개되긴 했으나 한국의 서양음악을 다룬 책이 번역 출간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서울대 음대교수,88서울올림픽 개.폐회식 자문위원,KBS교향악단 총감독,한국음악학연구회장을 역임하고 현재 한국예술종합학교장,계간지'낭만음악'발행인으로 있는 저자 이강숙씨는 한국을 대표하는 음악평론가.'열린 음악의 세계'는 79년 월간'레코드음악'에 기고한 글에서 따온 제목으로,그의 또다른 책의 제목인'음악적 모국어'와 함께 이강숙 음악 사상을 요약하는 키워드는 물론 80년대초 르네상스를 맞이한 음악비평계의 화두로 떠올랐다.

국내에서 지금까지 10쇄가 발행돼 스테디셀러로 자리를 굳힌 이 책에는 18~19세기 서양음악이 모델로 삼았던 음악관에서 탈피하지 못했던 당시,음악교육학.종족음악학을 이론적 무기로 삼아 음악현장을 지켜냈던 생생한 체험이 담겨 있다.

유학후 77년 귀국한 그는 80년대초까지만 해도 매일 저녁 음악회에 빠지지 않고 모습을 드러내는등 음악계 저변을 샅샅이 발로 훑어나갔다.

李씨의 그후 저서'음악의 방법''음악의 이해''한국음악학'등을 관통해 흐르는 음악 사상도 이 책에서 출발한 것.심각한 내용을 쉽고 재미있는 에세이 형식으로 풀어나간 이 책은 무분별하게 수입된 서양음악과 전통음악 사이에서 갈등하던 한국음악계에 평론가 특유의 처방을 내리고 있다.

한국과 일본은 서양음악의 수입,전통음악의 보존과 현대화라는 공통 과제를 안고 있기 때문에 이 책은 한국의 서양음악을 일본에 알리는 차원을 넘어 일본 음악계가 귀담아 들어야 할 해법을 담고 있다.

이 책의 번역에 참가한 민경찬씨는“일본 유학중 그곳 음악가들로부터 한국에도 클래식 음악이 있느냐는 질문을 받고 적잖이 당황했다”며“이 책을 통해 한국음악의 상황을 제대로 알릴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장직 음악전문기자

<사진설명>

이강숙 한국예술종합학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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