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김석기 거취’는 한국 사회 이성의 숙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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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김석기 경찰청장 후보자의 거취는 한국 사회의 성숙도를 시험하는 중요한 숙제다. 그는 이유없이 물러나도 안 되고, 물러나야 하는데 버텨서도 안 된다. 그의 몸은 대통령 것도, 자신의 것도 아니다. 한국 사회 ‘이성(理性)’의 몫이다.

야당과 반(反)이명박 시민단체는 ‘김석기 사퇴’ 등을 요구하며 다음 달 1일 대규모 거리집회를 가지려 한다. 그들은 진압이 잘못됐으며 김 후보자가 책임이 있다고 주장한다. 진압이 충분한 설득 없이 서둘러졌고, 위험물질이 있는데도 컨테이너를 망루에 부딪치는 등 과잉이었으며, 결과적으로 농성자 5명이 숨졌다는 것이다.

그러나 경찰의 설명은 다르다. 점거가 도심 대로변이며, 농성자들은 화염병에다 염산병·벽돌을 행인·도로에까지 던졌다. 화염병이 새총에 실려 미사일처럼 날았다. 게다가 점거는 계획적으로 이뤄졌다. 경찰은 조기 진압을 놓치면 사태가 오래가고 혼란과 시민 불편이 심할 것이라고 판단했다는 것이다.

현재까지 드러난 김 후보자의 관여 부분은 현장 지휘관들이 특공대를 통한 조기 진압으로 의견을 모아오자 이를 승인한 것이다. 검찰은 진압의 구체적인 단계에서 그가 추가적으로 관여한 부분이 있는지를 파악하고 있다. 경찰이 과잉으로 공권력을 행사했으며, 이에 김 후보자가 책임질 부분이 있다면 책임져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검찰의 진상 조사 결과에 달려 있다.

수사 결과가 나오기도 전에 야당이나 시민단체가 거리투쟁에 나서는 것은 사건의 진실이라는 이성보다는 사람이 다수 죽었다는 감성에 호소하는 것이다. 물론 시민의 희생은 비극적인 일이다. 그래서 대통령도 유감을 표명했다. 그러나 사망자 발생과 문책은 별개의 문제다. 선진국에선 피의자들의 상당한 희생이 발생해도 정당한 법 집행이라면 경찰에게 책임을 묻지 않는다. 정당한 법 집행을 하고도 문책을 받는다면 공권력이 무력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2005년 12월 노무현 대통령은 이를 어겼다. 세계무역기구 쌀 협상안에 반대하는 11월 농민시위에서 경찰과 충돌해 농민 2명이 사망했다. 야당과 시민·농민단체는 허준영 경찰청장의 사퇴를 요구했다. 허 청장은 법 집행의 정당성과 청장 임기 보장제도를 들어 사퇴를 거부했지만 청와대 압력을 이겨낼 수 없었다. 노 대통령은 대국민 사과성명에서 경찰의 공권력 남용을 문책했다. 경찰 총수가 여론 몰이의 희생양이 되어 공권력 약화를 불렀다는 비판이 나왔다.

김 후보자의 거취는 경찰이 무엇을 어떻게 얼마나 잘못했느냐의 여부에 따라 정해져야 한다. 그것이 이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