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천도(遷都)가 국토 균형발전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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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행정수도 이전'과 관련한 정부의 종합적인 계획이 윤곽을 드러냈다. 2012년부터 2014년까지 85개 국가기관과 소속원 2만3000여명이 충청권 '행정수도'로 옮겨가는 거대 프로젝트의 잠정안이 발표됐다. 오늘 공청회에 이어 이달 중 신행정수도건설추진위의 심의.의결이 있고, 7월 중 대통령의 최종 승인으로 확정되는 등 일사천리로 진행될 전망이다. 국회.대법원 등 11개 헌법기관의 경우 국회 동의절차를 거쳐야 하지만 여대야소의 17대 국회 구성을 감안하면 이전은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우리는 정부가 수도 이전이란 중대사를 충분한 사회적 합의 절차도 생략한 채 속전속결로 진행하려는데 대해 누차 심각한 우려를 표시했다. 한국은 전국토의 11.8%에 불과한 수도권 지역에 전체인구의 47.2%가 거주하고 있다. 수도권 인구 집중도가 일본(32.4%).프랑스(18.7%)보다도 높다. 따라서 국토의 균형발전과 수도권 과밀 해소를 완화하기 위해선 여러 형태의 대안을 모색해야 한다. 그러나 다수 국민이 제대로 판단하고 입장을 정할 겨를도 없이 밀어붙이는 것은 잘못된 일이다.

행정수도 이전문제가 위헌이라는 헌법소원이 추진될 정도로 절차와 정당성을 의심받고 있는 이유도 이 같은 정부의 일방적 사업추진 방식에 있다. 특히 그동안 행정수도만 옮기는 것이라고 설명하다 이번에 입법부와 사법부의 주요기관까지 포함시켜 사실상의 천도(遷都)로 슬그머니 격을 높인 것은 국민에 대한 사기극이나 다름없다. 5년 임기의 정권이 천도를 결정하고 일방적으로 졸속 추진하는 것은 무리다.

노무현 대통령의 대선공약이라 국민 동의 절차를 마친 것이라고 하지만 수도권 과밀해소와 천도는 별개의 문제다. 국회에서 관련 특별법이 통과됐다는 점은 정당성의 한 근거일 수 있다. 그러나 당시 선거를 앞둔 여야가 충청표를 의식해 정략적으로 결정했다는 사실은 삼척동자도 안다. 이전비용만 해도 대선기간 중엔 4조~6조원이라더니 45조원으로 불어났고, 일부 전문가는 100조원이 넘는다고 한다. 주한미군 감축에 따른 국방비 부담만도 휘청거릴 상황에서 그 재원은 또 어디서 구할 것인가.

이전지가 왜 충청권인지도 납득하기 어렵다. 통일 이후의 상황을 감안하면 서울보다 남쪽으로 천도를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의견이 많다. 수도권이 충청권으로 확장되는 것은 지역 균형 발전의 취지에 어긋나는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이런 상태에서 노 대통령의 임기 말인 2007년에 수도 착공에 들어가겠다고 하니 같은 해의 대선에서 충청표를 얻기 위한 정략이라는 말이 나오는 것이다.

천도는 후손에게 물려줄 국토의 공간구조를 바꾸는 국가백년대계다. 정부는 이제라도 민의를 수렴해야 하며 필요하다면 국민투표에 부쳐야 한다. 다음 정권에서 백지화된다면 그 후유증은 누가 책임질 것인가. 형식적으로 공청회 한번 열고 대통령이 결정하는 것은 권위주의적 방식이다. 수도권 과밀 해소와 지역 균형 발전을 위해 천도를 한다는 것은 본말이 전도된 위태로운 발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