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국불안땐 이회창 유리 판단 - 김종필 총재, 下野공세 늦춘 배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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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김종필(金鍾泌)자민련 총재는 지난주 TV토론회용으로 작성된 실무진의 발언준비자료중'김영삼(金泳三)대통령 하야요구'부분을 삭제했다.

검은 사인펜으로 직접 ×표를 쳤다.

金대통령의 5.30담화이후 견지해온'金대통령 하야 불가피'입장이 1백80도 달라진 순간이다.

12일의 KBS-조선일보 TV토론회에서는“하야는 바람직하지 않다”고 발을 뺐다.14일 부산 방문때엔“金대통령을 잘못 모신 사람들에게 더 큰 책임이 있다.모두 金대통령에게만 잘못을 미루고 있다”며 아예 金대통령을 옹호하는 인상까지 주었다.

金총재가 金대통령 공격을 늦춘 뜻은 어디에 있을까-. 결론부터 얘기하면 신한국당의 이회창(李會昌)대표를 흠집내 이수성(李壽成)고문을 도와주자는 것이다.이같은 金총재의 표면적인'입장변화'는 지난 7일 있었던 李고문과의 골프회동 이후 있었다.

당시 李고문은 金총재에게“金대통령 좀 그만 공격하시고 정국안정을 이뤄야 하지 않겠습니까”라고 했다.

이날 두 사람간에는'폭넓은' 얘기가 오갔다고 한다.

실제로 金총재는 李고문에게“(金대통령으로부터 경선과 관련해)뭐 언질을 받았습니까”라고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고 한다.李고문은 대답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金총재는 여권의 유력후보중 내각제부분에서 어느 정도 뜻을 같이 할 수 있는 후보로 李고문을 점찍어 왔다.이런 연장선에서 李고문을 측면지원할 필요성을 느끼고 있는 것이다.李고문의 상승은 바로 李대표의 하강과 연결되기 때문이다.

金총재측은 최근 李고문 진영에 속속 가세하고 있는 의원.지구당위원장들이 늘어나면서 李고문의 세(勢)가 커지고 있는 것도 신한국당내에서 李대표에 대한 견제심리가 작용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그러나 그보다 더 큰 요인은 金총재의 생존책이라는 분석이다.

李대표가 여권후보가 될 경우 자신의 지지기반인 충청권을 잠식,자신의 기반이 흔들릴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란 것이다.

金총재 핵심측근은 15일“金총재는 현재 정국이 안정기조로 가면 李고문이 여권주자가 될 가능성이 크고 격변하는 상황이 오면 李대표가 될 것이라는 인식을 하고 있다”고 전했다.金총재가 대통령 하야요구를 거두어들인 배경의 일단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실제로 李대표에 대한 자민련의 비난은 나날이 강화되고 있다.자민련은 내부적으로'이회창 대해부-정치 풋내기에 사상검증 안된 오뉴월 수양버들'이라는 30쪽짜리 문건을 작성해 이해당사자들의 촉각을 곤두세우게 하고 있다.李대표가'돈으로 표사기'의 구태에 앞장서고 있다고 극렬 비난하는등 11개 항목으로 이뤄진 이 문건은 이른바'이회창 흠집내기의 종합판'인 셈이다.

'이회창공격→이수성부상→내각제 연합'으로 가기 위한 계산된 수순(手順)이라는 지적이다.

반면 자민련은 이제껏 이수성고문을 공격하는 논평.성명을 단 한건도 내지 않았다. 김현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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