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자루이 만난 김정일, 후진타오 친서 양손 뻗어 받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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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23일 왕자루이(王家瑞) 중국 공산당 대외연락부장을 만난 건 복합적인 의미를 가진다. 우선 김 위원장 입장에선 그간 제기돼 온 건강이상설을 불식하는 계기가 됐다. 김 위원장은 이날 강석주 외무성 제1부상이 동석한 가운데 열린 오찬에서 술잔을 들어 건배하는 등 건강한 모습을 과시했다. 회담 중엔 두 손을 테이블 너머로 뻗어 왕 부장이 가져온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의 친서를 받는 모습도 공개됐다. 통일부 당국자는 “김 위원장은 건강에 조금만 이상이 있어도 공개 활동은 물론이고 외빈 접견을 하지 않았다”며 “이번 접견은 그가 건강에 자신이 있다는 방증”이라고 분석했다.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中)이 23일 평양을 방문한 왕자루이 중국 공산당 대외연락부장으로부터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이 보낸 친서를 받아 내용을 읽어보고 있다. 김 위원장의 오른쪽에는 이날 회동에 동석한 강석주 외무성 제1부상이 서있다. [평양 AFP=연합]

새로 출범한 미 오바마 행정부와의 관계 개선이나 특사 교환을 염두에 둔 조치일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북한이 가장 신뢰하는 중국에 김 위원장의 건강을 보여줌으로써 국내 정치활동 정상화에 이어 대외활동이 가능하다는 메시지를 대외에 내보인 것이란 얘기다. 북한과 중국은 국교 수립 60주년을 맞는 올해를 ‘친선의 해’로 동시에 선포했다. 그런 만큼 왕 부장과의 면담을 신호탄으로 올해 양측 고위층 접촉이 활발할 전망이다.

이날 후진타오 주석의 친서 내용은 공개되지 않았지만 후진타오 주석과 김 위원장 간 북·중 정상외교를 타진하는 내용이 들어 있을 가능성이 있다는 게 정보 당국 관계자들의 관측이다. 이와 함께 중국의 대규모 대북 경제 지원 약속이 포함됐을 가능성도 거론된다.

양국의 우호 관계를 과시함으로써 북·미 협상을 앞둔 미국을 압박하려는 전술의 일환이란 분석도 있다. 오바마 행정부의 출범과 그 직전에 나온 북한의 대남 초강경 성명 등으로 한반도 정세가 미묘한 시기인 데다 왕 부장이 최고지도자의 친서를 가져간 사실상의 ‘특사’라는 점에서 북·중 관계개선 이상의 의미심장한 이야기가 두 사람 간에 오갔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얘기가 정보 당국에서 나온다. 

정용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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