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불문…직급 불문…"승진하고 싶은 사람 손들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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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1면

자신이 승진할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면 스스로 승진 신청을 하게 하는 등 독특한 인사 제도를 운영하는 외국 기업이 있다. 이런 제도를 도입하는 목적은 인사의 공정성과 합리성을 확보하기 위한 것. 이를 바탕으로 연공 서열 파괴와 연봉제를 지탱하는 것이다.

'승진신청제'를 실시하는 기업은 다국적 제약사인 한국MSD다. 올해 처음 도입했다. 대상은 말단 사원에서 차장까지. 전에는 담당 팀장이 승진 대상자를 올리면 임원이 최종 결정했으나 올해부터는 스스로 신청하는 사람들로 승진 대상을 정했다.

신청서에 자신의 최근 공적과 능력, 그리고 승진하면 이렇게 잘할 수 있다는 것 등을 적어내면 이를 바탕으로 심사한다. 매년 2~3월에 신청을 받아 4월에 승진 인사를 한다. 이에 따라 이달 초 전 직원 440명 중 67명이 승진했다. 승진신청제는 미국 본사에도 없는 제도다.

이 회사 관계자는 "전에는 능력이 충분한데도 연한이 차지 않으면 팀장들이 승진 추천을 하지 않는 경우가 있었다"면서 "이 같은 연공 서열 문화를 없애려고 승진신청제를 만든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또 "신청서를 내기 전에 팀장과 상의하게 하기 때문에 신청하고서 탈락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전했다.

한국MSD의 고과 제도도 독특하다. 연말에 팀장이 평가하는 것은 여느 회사나 마찬가지다. 그러나 반드시 평가받는 사람을 잘 아는 5~6명에게서 의견서를 받고, 이를 바탕으로 고과를 매기도록 했다. 누구에게서 의견서를 받을 것인지는 연초에 당사자와 팀장이 논의해 정한다. 같은 팀원일 수도 있고, 다른 부서원일 수도 있다. 홍보 담당 김민정(29) 대리는 함께 일하는 홍보 대행 업체 직원을 의견서 제출자에 포함했다.

임직원 50명이 일하는 고어코리아는 글로벌 직원이 고과 평가에 참여한다. 예를 들어 캐주얼 의류 마케팅 담당이라면, 한국을 포함해 아시아 모든 나라의 캐주얼 담당자들에게서 평가서를 받아 이를 평균해 점수를 매긴다. 이는 미국 본사의 방침이다. 세계를 아시아.북미.유럽 셋으로 나눠 각각의 지역에서 마찬가지로 평가한다.

담당 분야가 세분화돼 나라마다 같은 분야 담당이 2~3명 정도라지만, 그래도 수십명의 평가를 받게 된다. 아시아 지역의 분야별 담당자끼리 수시로 회의를 하고 교류해 서로 잘 알기 때문에 이런 평가 방식이 가능하다.

고어코리아 관계자는 "많은 사람이 평가하기 때문에 대부분 결과에 수긍한다"면서 "1991년 한국 지사가 설립된 뒤 지금까지 단 한 명도 고과 결과에 이의를 달지 않았다"고 말했다.

권혁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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