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대학만이 목적인 교육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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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사교육비 액수가 가공할만한 수치라는 뉴스가 보도되기 시작하더니 최근 각 언론들은 검찰에서 학원비리와 교육방송비리를 수사해 우리나라 부정부패 먹이사슬의 정점을 파헤쳤다고 대서특필했다.그 보도에 의하면 각종 공직자 비리수사에서 수표추적결과 뇌물의 최종사용자가 과외교사인 적이 여러번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단도직입적으로 학부모 입장에서 말한다면“그걸 이제서야 알았느냐”고 되묻고 싶다.우리의 교육실태가 이 지경이 된 것이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요,이미 초등학교 이상의 자녀를 둔 사람이라면 직.간접 경험을 통해 익히 잘 알고 있는 사실이기 때문이다.공식화되지 않았을 뿐 교육부패와 그에 따른 비리는 이미 피부에 와닿는 문제며,과중한 교육비 지출로 인해 야기되는 과외망국론은 벌써 오랜 세월 누적된 해묵은 주제가 아니던가.그런데도 불구하고 이 문제가 지금까지 방치돼 왔다는 사실에는 학부모의 한사람으로서 분노마저 느낀다.

그러면 이 책임을 과연 누구에게 돌릴 수 있을 것인가.한해가 멀다하고 입시제도를 바꿔야만 하는 정부인가,아니면 한 학급에 60명씩이나 되는 아이들을 가르치며 잡무에 시달리는 교사들인가,자식의 보다 나은 미래를 위해서는 어떻게든 대학문 안에 들여놓아야 하겠기에 온갖 열성을 다할 수밖에 없는 부모들인가.이들은 서로 뒤엉킨 채 꼬리를 물고 빙글빙글 돌기만 하는 괴물스러운 삼각체인을 형성하고 있다.그러는 사이 서울에선 두 건물 건너 학원이 하나 나오게 됐고,학원 안 다니는 아이가 없는 세상이 되고 말았다.또 교육비 때문에 파출부를 하고 이민까지 간다는 사람의 마음이 충분히 공감대를 형성할 정도가 돼 버렸다.만약 이 삼자간의 관계가 해결책을 찾아 정상화되지 못한다면 언젠가는 함께 자멸하고 말지도 모를 일이다.

우리는 알고 있다.그 셋은 기실 우리가 처한 사회현실의 희생물이란 사실을.그리고 그 사회현실 또한 우리의 의식과 무의식이 창출해낸 소산물이란 것을.대학 입학과 졸업장에 인생의 모든 것을 걸게 만든 비정상적인 풍토는 결국 문제풀이 기능을 양성시키기 위한 입시산업만 번창하게 만들었다.우리 아이들은 이미 그러한 공부가 대학만 들어가면 다 무용지물이란 사실을 잘 알고 있다.12년간 학교와 학원,과외를 오가며 젊음과 능력,시간과 돈을 바쳐 하는 공부가 오직 대학입시용이라는 것이다.그러나 그들은 알고 있다.다른 애들 다 하는 것,나만 안 하면 결국 손해보는 것은 나 자신이라는 것을. 나는 감히 한국에는 교육이 없다고 말하려 한다.한국의 교육이라는 것은 대학생을 만들기 위한 기능적 뒷바라지 외에는 역할이 없기 때문이다.그리고 이 현상은 이제 전국적이고 총체적인 것이 됐다.누구랄 것도 없이 4천만 국민 모두가 이를 방치했고 조장했으며,추종하는데 앞장서고 있다.따라서 우리의 교육실태는 어느새 교육 아닌 교육을 시키는 수많은 선생님들과 그 뒷바라지에 허리가 휘는 부모들,그것을 교육이라고 받는 가엾은 아이들을 양산해 황폐한 사회를 만드는 주범이 돼버렸다.

공(公)교육은 이미 죽었고,교사와 학생간의 커뮤니케이션은 단절됐다.그러한 상황에서 사(私)교육의 번창은 실상 붕괴직전의 몸부림과도 같은 것이다.이번에 자기 아이가 다니는 학원이 문을 닫고 그 과외교사가 구속되는 것을 본 엄마들은“검찰이 공연히 비싼 수강료 다 내고 학습진도만 더디게 만들었다”며 속을 태웠다.학부모와 학생이 공교육을 신뢰한다면,또 대학졸업장이 교육목적의 전부가 아니라면 이런 파행적인 교육현장이 존재할 수 있겠는가. 그동안 정부에서는 수차례 교육개혁을 논의하고 제시해 왔지만 우리의 교육에 대한 근본적 개혁은 단순한 제도의 개혁만으로는 불가능하다.우리의 교육이념과 방향이'대학만이 목적이 아닌 사회',사교육비를 과감히 공교육비로 투자해'좋은 환경의 학교''신뢰할 수 있는 교사'를 만드는 쪽으로 가닥잡을 때만이 그 해결의 단초를 제공할 수 있을 것이다. 장숙경 YMCA 실행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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