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기자칼럼>차입경영, 시장원리로 풀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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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빚많은 기업에 세금을 더 물린다'고 한다.차입금(부채)이 자기자본의 일정 배수를 초과할 경우 초과금액에 대한 이자를 비용으로 인정하지 않겠다는 얘기다.가령 인정받지 못하는 부채가 1백억원,금리가 10%라면 10억원의 이자를 비용으로 계상할 수 없게 돼 이에 대한 법인세를 추가로 부담하게 된다.따라서 기준을 느슨하게 잡는다 하더라도 이미 산더미같은 빚을 지고 있는 기업들은 걱정거리가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삼미.한보.진로등 굵직한 기업들의 파산위기를 경험하고 보니 빚내 장사하는 경영관행에 쐐기를 박아야 한다고 대체로 공감하는 분위기다.문제는 방법이다.지나치게 적대적이고 경직적인 제재는 불필요한 반발을 불러일으킬 가능성이 있다.배당을 적게 준다고 해서 얼마 이상 반드시 지급하라고 지시할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다.

대부분의 국가는 부채에 대한 대가인 이자는 비용으로 인정하면서 자기자본에 대한 배당은 비용으로 인정하지 않는다.이자와 배당은 성격이 다르기 때문이다.주식회사의 주인인 주주는 감가상각(기계이용의 대가).임금(사람).이자(부채)를 비용으로 떨고 남는 것을 제몫(배당)으로 챙기게 된다.이자를 비용으로 인정하는 것이 불공평하다면 법인소득세를 물고 난 배당에 대해 주주가 개인소득세를 또 내는 이중과세 역시 불공평하다고 보아야 한다.

여하튼 이자가 비용으로 인정되는 한 기업은 차입경영의 유혹에서 벗어날 수 없다.할 수만 있다면 1백% 빚으로 장사하는 것이 최선이다.이런 극단적인 기업이 존재할 수 없는 이유는 투자판단이 잘못되거나 영업환경이 악화되면 원리금 지급이 어려워지고 최악의 경우 파산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과도한 부채의존을 막는'시장적'접근은 파산위험을 현실화해'일단 덩치를 키워놓으면 망하지 않는다'는 신화를 깨는 것이다.부채가 늘어나면 파산위험도 높아진다는 사실을 은행이나 투자자가 인식해 이사의 경영행위를 감시하고 필요하면 위험 증가에 걸맞은 대가(금리 또는 배당)를 요구할 수 있는 실질적 여건을 조성해야 한다.소수주주의 발언권을 강화하는 것도,경쟁제한적 규제를 철폐하는 것도 그래서 필요하다.정부도,기업도 '성장을 위해 싼 자금을 공급해야 한다'는 생각을 바꿀 때가 됐다.금리든 배당이든 자금코스트는 시장이 결정하게 내버려두고 자금코스트를 웃도는 수익률을 제공하는 투자기회를 개발하는데 정력을 쏟아야 한다.

권성철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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